리코더 소리로 오겜 팬덤 일으킨 이 남자, 이번엔 소리꾼 시김새에 꽂혔다
2022.03.14 18:35
수정 : 2022.03.14 18:35기사원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옥자'의 음악감독으로 한국을 너머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재일 음악감독(40·사진). 뮤지컬과 무용, 전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경계 없는 행보를 보여온 그가 또다시 새로운 행보에 나섰다.
정재일은 지난 1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20여년 전부터 '푸리'라는 밴드를 통해 전통음악에 대한 공부와 실험을 해 올 정도로 애정이 있는데다 한승석 음악감독, 배삼식 작가와 이전에 두 장의 앨범 작업을 같이 해오며 여러 음악적 실험들을 해왔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서 다시 함께하게 됐다"며 "텍스트와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배삼식 작가의 대본과 한승석 감독의 작창에 충실하고 정영두 연출의 '물'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작곡을 했다"고 밝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배삼식의 극본을 통해 노자의 사상과 엮이면서 각 인물의 욕망과 본성이 변화무쌍한 물에 투영되는 콘셉트의 이번 작품에 힘을 더하기 위해 정재일은 '증폭'에 포커스를 두고 음악 작업에 매진했다. 정재일은 "작곡이라기보다 현대적인 음향이나 서양의 화성을 결합해 판소리의 시김새나 선율을 증폭시키도록 작업했다"며 "공간 전체를 감싸안는 전자음악과 전통 아악에서 쓰는 편종, 편경의 소리 등 고대로부터 내려져온 소리를 조화시키면서 음향을 통해 드라마에 맞는 기운을 감돌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정재일은 "이번 작품에서 작곡가로서 절대 먼저 앞서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무엇보다 소리꾼들의 시김새에 주목했다.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그저 텍스트와 도창을 뒷받침해주고 선율이 돋보일 수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정재일은 그 과정에서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에 힘썼다. 거문고와 가야금, 대금, 피리, 아쟁을 연주하는 13인조의 연주자들을 배치하고 가상악기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합했다. "극장이 마치 바닷속에 잠겨있는 듯 공간을 꽉 채우는 음향을 추구했다. 각 배역을 살리는 음악이라기 보다 전체적인 질감을 만들고자 했다. 알 수 없는 음들로 극장 안을 꽉 채워서 무대의 미장센이 곧 음악처럼 보이고 음악처럼 들리게 했다."
정재일은 "20년 넘게 음악을 업으로 삼아오면서 그 안의 의미와 철학을 찾으려 발버둥쳐왔는데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나는 그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항상 초보자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업해왔던 것이 지금까지 내 삶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그동안 꽤 유명한 작업들을 해왔지만 제 오리지널 작업보다는 영화, 무용, 연극, 현대미술과 함께 작업을 했기에 누군가는 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이제 모든 지점에 가본 것 같은데 되려 음악이 주인공인 작업을 많이 하지 못한 것 같다"며 "올해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해보자 생각하며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마 늦가을 쯤에는 열매를 맺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