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하, 뮤지션 직업은 때론 採光…빛의 앨범 '더 글림'

      2022.03.15 06:03   수정 : 2022.03.16 10:51기사원문
[서울=뉴시스] 박지하. 2022.03.15. (사진 = Marcin T. Jozefiak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션의 직업은 때론 채광(採光)이 된다.

최근 독일 음반사 글리터비트(tak:til, Glitterbeat)를 통해 새 앨범 '더 글림(The Gleam)'을 발매한 박지하가 그렇다.

'글림'이라는 타이틀은 어디에 반사된 어슴푸레한 빛이라는 뜻. 하루 종일 인간과 시시각각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빛의 다양한 형태를 담은 음반이다.



빛의 개념에서 출발한 다양한 소리의 조각이 담겼다. 어둠을 꿰뚫는 차가운 빛줄기처럼 깨어날 때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인 첫 곡 '앳 돈(At Dawn)'으로 출발해 즉각적으로 포착된 빛의 다양한 형태가 여러 감정의 출렁임으로 표현된 마지막곡 '템포러리 이너티아(Temporary Inertia)'까지. 러닝타임 50분 내내 '귀로 보는 빛'이 펼쳐진다.

마치 어둠에 묻혀 있던 빛의 신음 소리를 조심히 벗겨내 희망의 무늬를 발견해내는 듯하다. 그렇게 박지하의 음들은 빛을 자연스럽고 오롯하게 받아들인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박지하는 처음부터 빛이라는 테마를 정한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희미한 빛들이 하나씩 쌓여서 희망이라는 결과물을 만들 듯, 그렇게 작업했다"고 했다.

"일상을 살면서 한 곡 한 곡,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어요. 제목도 없었죠. 믹싱까지 하고 이걸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가 글림이라는 단어를 찾게 됐어요. 왜 거기에 끌렸는지 모르는데, 그게 출발이 됐고 흐르는 하루를 담게 됐죠."

[서울=뉴시스] 박지하 '더 글림' 커버. 2022.02.22. (사진 = 구본창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앳 돈', '선라이즈 : 어 송 오브 투 휴먼스(Sunrise: A Song Of Two Humans)', '템포러리 이너티아'는 앞서 한국 원주 뮤지엄 산 내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명상관에서 열린 특별한 공연을 위해 만들어졌던 곡. 음반에 실린 전 단계 버전의 곡들은 녹음용 마이크만 설치하고 공간 울림으로만 연주했다. 그런 소리의 자연스러움이 이번 음반에도 물들어 있다.

생황이 단정하게 찍혀 마치 귀한 유물처럼 보이는 커버 사진도 자연스럽다. 아무 사진이나 찍지 않는다는 사진작가 구본창이 박지하의 악기를 촬영해준 것이다.

이번 박지하의 음반에 아트디렉션과 그래픽 디자인으로 함께한 포스트포에틱스 조완 대표가 구 작가의 유명한 정물 사진 시리즈처럼 악기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실 이 제안에 대해 박지하는 처음에 조심스러워했다. 그녀의 음악은 국악의 범주 안에만 갇혀 있기엔 이미 다채로운데 다시 특정 이미지로 정형화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구본창 선생님이 음악과 어울리게 정갈하게 촬영해주셨더라고요.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 마음에 들었습니다. 포스트포에틱스에서 구 선생님의 사진과 함께 음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 조화롭게 만들어주신 부분도 컸고요."

박지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국악 기반의 그룹 '숨[suːm]'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2016년 11월 정규 1집 '커뮤니언(Communion)'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뉴시스] 박지하. 2022.03.15. (사진 = studio gut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피리, 생황, 양금 등 국악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소리에 주목하는 멀티플레이어로 통한다. 이젠 전통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했다. 해외에서는 그녀의 음악을 앰비언트, 미니멀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털 등의 장르로 구분한다.

실제 이번 음반 수록곡 '더 웨이 오브 스피리추얼 브리스(The Way Of Spiritual Breath)'는 테크노음악을 듣다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그 리듬을 박지하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곡이다. '레스트레슬리 투워즈(Restlessly Towards)'는 라이브 연주때 양금 소리에 이펙터로 효과를 주어 연주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뮤지션인 만큼, 박지하의 해외 공연 스케줄은 이미 꽉 차 있다. 오는 16일과 19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참가를 시작으로, 같은 달 28~29일 영국 런던 카페오토, 31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카운터플로스 페스티벌, 6월 18일 독일 디지털 베를린, 6월 22일~26일 독일 몬하임 트리엔날레 등에서 무대가 예정돼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영국의 작가이자 퍼포머인 로이 클레어 포터(Roy Claire Potter)와 함께하는 공연도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도 쉽게 중심을 잃거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박지하는 차분하게 음악을 만들어왔다. 점점 미니멀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건 자연스러움으로 정수만 뽑아내서 일 것이다.
그래서 빛은 죄다 음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박지하와 그녀의 음반 '글림'이 깨닫게 한다.

"빛도 그렇고 숨도 그렇고 없는 듯한데, 항상 있는 것이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가 쌓여서 큰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정말 또렷한 빛으로 보일 때도 있고요. 제 음악이 그런 거 같아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한 에너지가 쌓여 엄청난 에너지가 되는 그런 음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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