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아들 남의 집에 보내고 44년동안 마음 편한적 없어"

      2022.03.28 18:07   수정 : 2022.03.28 18:07기사원문
자그마치 44년이 흘렀다. 장남을 잃은 어미는 올해 71살이 됐지만 아들을 잊어본 적이 없다.

머리숱이 많고 빠알간 홍조를 귀엽게 띄던 만 8개월 안현수군은 지난 1978년 3월 1일 수요일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다른 집에 맡겨졌다.



현수군 어머니 김정우씨는 당시 가정 내 불화가 너무 심한 나머지 남편이자 현수군 아버지인 안모씨가 "친구 엄마가 키워준다고 했다"는 말에 생년월일과 생시를 적은 종이와 함께 현수를 보냈다. 김씨는 "아이를 맡긴 집에 한 달여 정도 지난 시점 즈음 찾아갔더니 아이가 없었다"며 "분유까지 사서 들고 갔는데 아이가 없어 '어디 갔냐'고 물으니 '다른 집에 줬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수군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현수군에 대한 출생신고도 현수군이 다른 집에 맡겨진 뒤에 할 수 밖에 없었다. 김씨는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었다. 방을 얻을 돈도 없었고, 결국 현수를 춘천 친정집에서 낳았다"며 "현수가 너무 어리기도 하고, 현수는 자신의 주민번호나 이름도 모르고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아들 현수군과 함께 한 기억이 8개월여 남짓이지만 김씨는 현수군이 영리했다고 기억했다. 백일이 되던 날에는 둘째 동서가 선물해준 핑크색 도톰한 꼬까옷을 입고 사진관에서 사진도 남겼다. 김씨는 "어린 아기였지만 야물다고 해야하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며 "밤에 자려고 누으면 깜깜한 곳에서도 오뚜기를 기어가서 찾아 놀곤 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결혼생활 초기는 남편과 불화로 인한 다툼이 잦은 편이었다. 끝내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게 됐지만 어미는 지난 44년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다. 김씨는 "떡장사를 하면서 아이를 찾으러 골목 골목을 다 다녔다"며 "시장을 가도 우리 아들과 똑같이 생긴 또래 아이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후에도 둘째 딸이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 젊은 시절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지하철 역에서 마주쳤다'는 말에 지하철을 하염없이 오가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경기군포경찰서를 찾아 유전자(DNA)등록을 마쳤다. 경찰은 김씨의 유전자를 채취해 실종아동전문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에 자료를 전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국에 접수된 실종신고 가운데 김씨와 같은 유전자를 지닌 실종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아직 꿈에서 조차도 아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 했다며 그리움을 표했다.
그는 "사람이 자식에 대한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며 "할 말이 많지만 무엇보다 너무 미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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