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거짓과 불편한 진실

      2022.03.31 18:45   수정 : 2022.03.31 18:45기사원문
양극화 시대에 진실이라는 사실이 붕괴 혹은 쇠퇴할 수 있을까?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복잡한 상황에서 진실을 찾는 것은 곁가지와 편견의 무게를 가늠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을 두어 찾는 것을 의미하지만,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마치 이러한 '기반'을 구분하는 것 자체도 피로감 가득한 소모적인 논쟁이 된다.

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그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이 단어는 여론 형성에 있어 객관적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호도해 진실을 결정짓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이의 진실'이 '나의 진실'과 경쟁해 정확함이 사라지거나 모호해지는 상황을 반영한다.
소셜미디어와 미디어 매개체의 다양화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흑백논리 혹은 당파적인 이슈로 압축해 소모적인 논쟁을 쉽게 야기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와 소모적인 정쟁을 '진실의 붕괴'(Truth decay)라고 한다. 미국의 한 연구소는 특정 사실에 대해 양극화된 대중의 잣대의 원인을 네 가지에서 찾았다. 인지적 편견, 소셜미디어 및 정보 입수 생태계의 변화, 변화하는 정보 인식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결여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양극화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언론, 정부, 법원이나 기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와 진리 탐구 욕구를 소진시키며 사실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선거 진행 과정도 마치 두 거대한 축구팀의 경기를 보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승리 전략에서도 의도적인 파울을 저지르는 것이 게임의 일부가 되고, 심지어 심판까지 열렬한 팬이 되거나 야유와 비난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전 세계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독재국가의 통치행위를 비판하기보다 자국의 이익 여하에 따라 권장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적 전통에 위험한 전제를 남긴다.

한국에서도 선출된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상당히 높아져 그들의 정치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잣대와 투명성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인의 자가 성찰과 그들을 보도하는 언론의 날카로운 잣대 그리고 민주주의적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물론 이러한 대화는 사회적 피로를 야기할 수 있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결과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가는 여정 및 도출 과정이 깨끗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헌법적 임기 내에 대통령은 당파적인 선거 정치를 뛰어넘어 자신에게 투표하거나 반대한 사람에게도 그들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과거 한국의 지도자들이 실패한 원인은 단순히 적이 많아서였다기보다 아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리더의 자리는 언제나 외롭다.
하지만 지혜로운 리더에게 필요한 목소리는 본인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건설적 비판 및 특정 사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생각의 다양화(diversity of ideas)에 기반을 둔 건설적인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민주주의의 여정에 등불이 되지 않을까.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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