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폐국 대상'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우본의 변신
2022.04.01 06:30
수정 : 2022.04.01 06:30기사원문
[편집자주]우편을 배달해주고 쌈짓돈 통장을 불려주는 동네 우체국. 우리 일상에 공기처럼 존재해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체국은 특별하다. 우체국을 운영하는 우정사업본부는 공무원 조직이면서 유일하게 정부 예산을 받지 않고 번 돈을 오히려 정부 재정에 보태는 유일한 조직이다. 도서 산간 지역까지 구석구석 뻗어 있는 3400여개에 달하는 우체국은 은행마저 폐점하는 요즘 시대에 '국민 접점' 면에서 중요한 인프라다. '애물단지' 알뜰폰을 대중화한 것도,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란의 구원투수역할을 맡은 것도 우체국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우체국은 '디지털 복지'의 첨병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아침부터 300명씩 줄을 섰던 게 기억에 남아요."
지난 2020년 2월, 김화숙 충남 삽교우체국장은 낯선 풍경을 마주했다. 30년 넘게 여러 우체국에서 근무했지만 그렇게 많은 방문객은 처음이었다. 매일 아침 김 국장은 우체국 앞에서 마스크를 사러 온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룬 모습을 봤다.
개국 136년을 맞이한 지난 2020년, 우체국은 '공적 마스크 수급'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이는 적자로 허덕이던 우체국의 공적 역할을 재조명하고 지역사회의 주민과 접점을 늘리는 계기였다.
◇2000년에 출범한 우본…우편·보험·예금 등 사업 규모 142조
우체국의 역사는 130여년이 넘지만 우체국을 관장하는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000년에 출범했다. 당시 정보통신부 산하 소속기관이었다가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으로 재편됐다.
출범 이후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3400여개 우체국과 4만3000여명의 직원 등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갖춘 국가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군 단위 도시지역과 읍면지역 곳곳에서 우편·보험·예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특히 민간금융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어촌이나 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농어촌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우체국 쇼핑과 알뜰폰 판매 등 다양한 수탁 사업을 운영해왔다.
우정사업본부가 관리하는 사업의 규모는 약 14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우정사업본부의 사업규모는 우편매출액 및 금융자산을 포함해 약 142조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택배 사업자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우정 사업은 곧 위기에 봉착했다.
실제로 우체국의 우편 물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총 우편물량은 29억5100만통이었다. 이는 전년보다 5.5% 감소한 수준이다. 2020년 한해 동안 우편물량은 31억2300만통이었다.
우편 물량이 감소하면서 우편사업의 수익성도 악화했다. 특히 지난 2011년 이후 우편사업의 경영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우편사업은 1450억원 적자가 발생해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인적·물적 네트워크 활용…도서산간지역까지 닿은 마스크
적자가 지속되면서 우정사업본부의 공적 기능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그러던 가운데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발발했다. 정부는 농협 및 약국과 더불어 우체국을 마스크 수급 및 판매처로 지정했다. 치솟는 마스크 가격과 물류 대란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2020년 2월28일 우체국은 공적 마스크 판매를 개시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대구·청도 지역과 읍면지역 내 총 1406개 우체국에서 마스크가 판매됐다.
우정사업본부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마스크 수급부터 운송·배부·판매에 이르기까지 우체국의 유기적 체계가 마스크 판매를 가능케 했다.
"마스크를 판매하지 않았던 기관이 전사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류 체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2020년 2월 당시에도 경북지방우정청 우편영업과에서 근무한 정성희 주무관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주무관은 "우체국이 아니라 복지센터 등 지자체에서 판매했다면 또 우체국 물류체계를 이용해야 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체국이 (공적 마스크 수급처로) 선정된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폐국 대상에 오른 우체국을 재평가하는 계기도 됐다. 당시 강원도 철원자등우체국장으로 근무했던 김미애 강원지방우정청 보험영업과 주무관은 "2020년도 상반기에 자등우체국이 정리된다고 했었는데 마스크 수급 이후 공적 순기능을 인정받아 폐국이 연기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 주무관이 근무한 철원자등우체국은 전체 인구가 2000명도 안되는 지역에 있었다. 고령층 주민이 많고 동네를 벗어나는 버스는 하루에 세번 오고 갔다.
김 주무관은 "연세가 많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세금 고지서를 안내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마스크 수급 때도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국영기관으로서 정말 필요한 일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전쟁터 같았던 마스크 배부 현장…"지역사회 중심 역할하기도"
물론 공적 마스크 배부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전례 없는 위기에 사람들의 불안은 커졌고 분노로도 이어졌다. 직원들은 사전 준비에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당시 경험을 회상하던 김화숙 삽교우체국장은 아직도 울컥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국장은 "분노한 군중 앞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며 "정말 빌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적 마스크 초기 수급 물량 및 지침 변동 그리고 그에 따른 민원과 각종 항의는 일선 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몫이었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업무량도 함께 늘었다. 김 국장은 "본연의 일을 하기도 힘든데 일손이 부족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공적 마스크 수급은 우체국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조명한 계기였다. 김 국장은 "30년 우체국 생활을 돌아볼 때 공적마스크 판매 개시 후 첫 일주일 동안 만큼 우체국이 지역사회의 중심이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나 약국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는 우체국의 역할이 컸다.
정 주무관 또한 "주변 직원들도 좀 더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국민들께서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어려움을 겪고 계실 때 항상 곁에서 지키는 우체국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갖고 그런 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