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진심인 '기상청 사람들', 북한에도 있다?
2022.04.02 10:00
수정 : 2022.04.02 10:00기사원문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다른 사람들은 '그깟 실수 좀 하면 어때'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절대 그러면 안되는 사람들이죠."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속 진하경 총괄2과장(박민영 분)은 예보하지 못한 국지성 호우로 민간에 피해가 발생하자 이렇게 말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기상청 사람들은 예보가 틀리는 날엔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한다.
"일기예보 사업은 매일 사람들 앞에서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그런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한 예보관도 조선중앙TV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남북을 불문하고 예보관들의 책임감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나 주민들의 주요 생업인 농업, 어업 등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북한에서도 날씨 예보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내일의 날씨'라는 공통의 고민을 하고 있는 남북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남한은 기상청 사람들, 북한은 기상수문국 사람들
북한의 기상수문국은 우리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곳이다. 기상 관측은 물론 수문·해양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1946년 7월 농림국 산하 '중앙기상대'로 발족해 1995년 독립부처로 승격했으며 1975년 5월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다.
기상수문국은 각종 예보와 경보를 발표하는 한편 해양, 기상, 강하천과 바다의 상태,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하며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12개의 처, 1개의 기상위성수신소, 10여개의 지방기상청, 27개의 기상관측소, 370개의 지역관측소와 산하연구소들로 구성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14년 6월,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기상수문국을 현지지도 했다. 김 총비서가 미래과학자거리에 가장 먼저 입주시킨 정부기관도 기상수문국이다. 폭우와 태풍, 가뭄 등 재해성 기후가 발생할 때마다 식량 생산량에 큰 타격을 입었던 북한이기에 김 총비서는 특히나 날씨 예보에 신경을 써왔다.
물론 '1호'의 관심이 큰 만큼 기상수문국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김 총비서는 현지지도 당시 "오보가 많다"며 예보 시스템의 현대화와 과학화를 주문하는 등 질책섞인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날씨 틀리면 어떡하지?…북한, 예보 현대화에 안간힘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5화에서는 예보하지 못한 국지성 호우로 인해 비를 맞고 가는 아이들, 합선 사고가 발생하는 장면에 이어 기상청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항의 전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보하지 못한 날씨로 인해 감당해야할 피해와 비난은 적지 않다. 북한은 어떨까.
기상수문국도 다르진 않다. 특히나 날씨 예보는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폭우와 태풍 8·9·10호를 연달아 맞은 재작년엔 유독 김 총비서가 발벗고 나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수해로 인해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라고 김 총비서가 직접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밝혔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기상수문국은 김 총비서의 방문 이후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작년 3월엔 지면자동기상관측과 레이더관측설비 등을 개발해 기상관측 자료들을 실시간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기상수문국은 초단기·단기·중기·장기로 나눠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폭우와 우박 수치 예보, 태풍 실황 분석 등을 비롯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해성 기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현대화'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상수문국이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의 지형에 맞게 해양관측방법을 현대화하여 가까운 바다, 먼 바다 해상예보 등 해양기상봉사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라고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라서다.
◇예보 전달에도 점점 신경쓰는 북한…달라진 기상캐스터?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대변인실 한기준(윤박 분) 통보관은 회의 때마다 참석해 언론 대응 방향을 전달받고 채유진(유라 분)과 같은 기상청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한다. 기상청이 분석한 날씨는 신문·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는데 예보를 잘 전달하는 것도 기상청의 일이다.
예보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상수문국도 최근 '전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는 2019년 4월27일 정규방송부터 일기예보 방식을 바꿨다. 기상캐스터는 카메라 앞에 앉아 예보 내용을 읽기만 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일어선 채 다양한 제스처를 써가며 설명을 하는 모습이다.
조선중앙TV는 또 2020년 8월 '기상수문국에서 알리는 소식'이라는 코너를 통해 기상수문국 부대장들이 직접 나와 상황실을 배경으로 호우 상황을 설명하는 새로운 예보 방식도 선보였다. 같은 해 태풍 '바비'가 닥쳤을 때 조선중앙TV는 밤샘 특보 체제 가동하며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현장 소식 전했다.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는 취재진의 모습도 가감없이 노출했다.
각종 재해로 인한 피해 상황을 잘 알리지 않는 북한으로서는 파격적인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피해 최소화'가 먼저라는 판단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또 기상수문국은 휴대전화를 통해 날씨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도 2019년부터 시작했다. 기상수문국이 개발한 휴대전화 날씨 애플리케이션(앱)은 15분 간격으로 단기·중기 예보를 제공해 기상정보의 접근성을 높이려 노력했다.
◇아직 낙후한 북한의 시설…남북 날씨 협력 가능성은
이처럼 북한이 기상 시스템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에도 기상 관측 장비는 여전히 남한의 1990년대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북한은 1975년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으나 국제협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 예보 능력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더군다나 북한은 기상 상황도 군사 기밀로 보고 노출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남북은 한반도라는 땅을 공유하고 같은 대기 영향권에 있다. 기상청 사람들은 북한의 대기측정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남북 모두 미세먼지나 날씨 예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지난 2018년 철도, 산림, 보건의료 등 남북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던 때처럼 날씨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가 다시 생길 수 있을까.
북한이 다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협력 가능성은 열려 있는 분야인 것 같다. 기상청 사람들과 기상수문국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기상청 사람들' 13화에서 진하경 과장은 태풍의 경로를 정확히 예측했지만,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과잉 예보'를 한다. 이미 지난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만큼, 국민들이 태풍에 더 철저히 대비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기상청의 예보가 틀린 것에 주목했지만 '기상청 사람들'은 "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교적 사계절이 명확한 남북은 폭우와 폭설 등 이상 기후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벌써부터 재해성 기후가 식량 생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자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래는 예측하긴 어렵지만 남북 모두 '날씨 맞히기'보단 '피해 최소화'를 우선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