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귀농 '맨땅에 헤딩'…"실패 귀농인 되고 싶지 않았죠"

      2022.04.02 10:14   수정 : 2022.04.02 10:14기사원문
지난달 29일 경북 구미시 선산읍 과수농원 '수정원'을 운영하는 임종국씨(60)가 사과 전지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남승렬 기자


임종국씨가 고구마 묘순을 살피고 있다. 2022.3.29© 뉴스1 남승렬 기자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구미=뉴스1) 남승렬 기자 = "그야말로 산골에서의 나홀로 귀농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준비없이 시작한 귀농이어서 초창기에 좌절도 많았지만 남자가 한번 결정한 귀농인 만큼 절대로 실패한 귀농인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경북 구미시 선산읍 비봉산 기슭에서 과수농원 '수정원'을 운영하는 임종국씨(60)는 올해 귀농 14년차다.

산 좋고 물 맑은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수정원에서 그는 여름사과 '썸머킹'과 추석사과 '아리수',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자연과 더불어 땀흘리며 살고 있다.

귀농 14년차, 거칠어진 손과 능숙하게 농기계를 다루는 솜씨를 봤을 때 이제는 말그대로 진짜 농부지만, 농부 이전의 임씨의 삶은 어땠을까.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63년생인 그는 구미 선산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수원과 안산 등에서 직장 생활과 사업을 25여년 했다.

"제가 원래 차량 엔지니어입니다. 자동차 바디인 차체의 자동화 라인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을 12년 정도 하다가 직장인 기아자동차가 1997년 부도가 난거에요. 어떡합니다. 당시엔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엔지니어링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었지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환란 사태의 진앙지로 상징되는 기아자동차가 부도 사태를 맞으면서 한국은 외환위기의 파고에 휩싸인다.

회사 부도 이후 임씨는 안산에 사무실을 내고 엔지니어링 업체를 운영했다.

IMF 여파에도 회사 운영은 양호했지만 임씨는 지쳐갔다고 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돈은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지만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는 제 자신이 보이더라"라며 "엔지니어링 업무라는게 순수 머리를 가지고 하는 일인데, 하루에 14시간을 컴퓨터 마우스 굴리면서 설계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임씨는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살다가는 '내 명대로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돈도 벌 만큼 벌어놨으니 당시 매스컴에 한창 단어가 오르내리던 귀농을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귀농을 결심한 지 6개월 만에 회사를 정리하고 귀농을 감했다.

당시가 2008년이었다. 그 때를 돌이키며 그는 '산골에서의 홀로서기'라는 표현을 썼다. 아내의 동의를 얻지 못해 홀로 구미 선산에 정착한 것이다.

임씨는 "구미 선산에 토지를 구입하고 불도저와 굴삭기로 개간을 시작하고 손수 황토집을 짓고 산골에서 홀로서기를 했다"며 "정착 초기 어려움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미리 세심하게 계획을 짜고 귀농 교육도 받은 뒤 귀농을 결심한 게 아니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무작정 귀농을 하다 보니 3~4년 정도는 허송 세월을 보냈다"며 "초창기엔 농사를 지어도 수익은 없고 적자 경영이라 좌절도 해봤지만 절대로 실패한 귀농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귀농 초기 좌절 끝에 여름사과 '썸머킹'과 추석사과 '아리수', 고구마를 주작목으로 선택한 것은 주효했다.

임씨는 현재 사과 농사 3000평(9917.3㎡), 고구마 농사 6000평(1만9834.7㎡)을 짓고 있다. 이밖에 콩 농사도 2000평(6611.5㎡) 짓고 있다. 순수한 농가 소득은 연간 8000만원 정도다.


그는 "이 정도면 앞으로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겠다 싶어 이제는 내실 있는 농사를 짓고 싶다"며 "제가 경험해 보니 귀농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더라. 이제 막 귀농을 준비하려는 이들을 위해 선배 귀농인으로서 강의도 더욱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미시귀농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임씨는 자치단체를 향한 건의의 말도 잊지 않았다.


"각 지자체들이 인구 유입을 위해 귀농인들을 유치하려고 지원금을 주는 등 애를 많이 쓰고 있지만 인구 41만명인 구미는 아쉬운게 없는지 농업에 대한 지원 자금이 가장 적은 데가 구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농업 분야에 대한 보조나 투자를 좀 확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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