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어린이의 웃음, 세상에 울림·위로 되길"
2022.04.03 10:37
수정 : 2022.04.03 10:3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꽃피운 어린이들의 사랑스러움, 보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의 허호 사진작가(63)는 3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16년째 전 세계 어린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그는 41년차 작가다.
허 작가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카메라 앵글을 들이댄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에는 사랑이 묻어난다. 엄마가 찍은 아이 사진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허 작가는 "내 마음 속 태도에 따라 사진도 달라진다"며 웃었다.
■한국전쟁 때 받은 도움으로 책임감 느껴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그는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1990년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스튜디오를 열고 당시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현대자동차, SK 등 대기업의 광고 사진을 도맡으며 이름을 날렸다.
가장 화려한 곳을 비추던 그의 카메라가 개발도상국 빈민가 골목으로 향한 것은 2005년부터다. 캠패션 후원자인 아내의 권유를 받고 필리핀으로 촬영을 떠나면서 사진가로서 두번째 삶이 시작됐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많은 곳을 사진에 담았지만 현지의 뒷골목 상황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사진가로서 흥미로운 소재였다.
그러나 컴패션이 한국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세워진 단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막중해졌다고 허 작가는 귀띔했다. 컴패션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25개국의 어린이를 후원자와 일대일로 맺어 자립 가능한 성인이 될 때까지 전인적(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적, 영적)으로 양육하는 기구다. 1952년 미국의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했다. 이후 전 세계로 확대돼 현재 220만여명의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다. 한국컴패션은 가난했던 시절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되갚기 위해 2003년 설립됐다. 약 14만명의 전 세계 어린이가 국내 후원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
허 작가는 컴패션과 인연을 맺은 후 1년에 평균 일곱번, 많게는 열세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녀온 국가만 해도 니카라과, 볼리비아, 아이티, 엘살바도르, 우간다 등 20개국이 넘는다. 동남아시아의 찌는 듯한 더위와 높은 습도 속에서, 때로는 지구 반대편 고산지대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어린이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2006년부터 총 열한차례 현지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사진에 담고 싶은 궁극적 가치는 '사랑'
허 작가는 열악한 현지 상황과 빠듯한 일정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피사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랑은 그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궁극적인 가치다.
허 작가는 "어려운 아이들이지만 사진을 찍을 수록 불행해 보이지 않고 주변 환경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며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오히려 스스로가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와 후원자들의 눈빛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을 보며 '나는 얼마나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허 작가의 사진 속 어린이들은 손톱 밑에 까맣게 때가 끼거나 낡은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가난의 참혹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표정은 그 누구보다 환하다. 그는 "처음에는 비참한 가난의 모습에 집중했지만 현지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웃음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변화하는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때다. 허 작가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 인근에 사는 4남매와의 인연을 회고했다. 4남매 모두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당시 집이 너무 낡아 위험해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몇 년 후 깨끗한 집에 이사한 모습으로 만났고, 또 몇 년 뒤에는 남자아이 둘이 장애인 체전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후원 받는 모든 아이들의 인생을 알 수는 없지만 건강하게 잘 큰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고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北과 선교사 사진에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든 지 40년이 넘었지만 '좋은 사진가'가 되기 위한 허 작가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현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좋은 사진을 남긴 현장에서 자신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지도 계속 되뇌인다.
허 작가는 "하나님이 나에게 사진가로서의 눈과 감성을 주셨다면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내 의무"라며 "결국 표현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사진을 보면 사랑이 녹아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북한과 해외 선교사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허 작가는 "북한의 상황과 지역 환경을 촬영해 보고 싶다"며 "해외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삶과 그로 인해 생긴 변화도 조명해 보고 싶은 주제"라고 덧붙였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