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영루에 취해 오르니 대동문, 진달래에 반해 걸으니 '힐링'

      2022.04.08 09:18   수정 : 2022.04.15 18:32기사원문
북한산성계곡 공원입구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위용. 왼쪽 원효봉-만경대-노적봉, 오른쪽 의상봉-용출봉 © 뉴스1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북한산성계곡 등산로입구. 둘레길과 등산로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탐방객들이 계곡풍경을 즐기고 있다 © 뉴스1


북한산성계곡. 등산로에 들어선지 10분 밖에 안되었는데, 깊은 계곡에 들어선 듯 물소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뉴스1


노적사와 노적봉. 거대한 노적봉의 수직 암벽에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다 © 뉴스1


산영루. 예전에는 물가에 산이 비추는 고요한 장소였을까... 현재는 급류가 콸콸 쏟아져 내리는 계곡 옆이다 © 뉴스1


용암문에서 대동문 가는 길. 춘사월이지만, 고지대 등산로는 아직 갈색낙엽에 뒤덮힌 가을 풍경이다 © 뉴스1


진달래 능선. 부드러운 등산로 주변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진달래의 향연. 사진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 뉴스1


진달래능선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척추. 왼쪽 용암봉-만경대-인수봉, 가운데 영봉, 오른쪽 도봉산 ©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예고없이 찾아와 일상생활을 크게 변화시킨 코로나 시대가 2년 이상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여행의 제한이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에서도 원거리 여행은 크게 줄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국립공원도 지리산과 설악산 등 멀리 있는 산의 방문객은 감소했다. 단, 예외가 있는데, 바로 도시에 인접한 북한산의 탐방객수는 코로나 이전의 560만 명에서 작년 740만 명으로 32%나 증가했다.
산에 가지 않던 MZ 세대가 산을 찾아가 산린이(등산초보자), 등산크루(crew/모임), 산스타그램이란 용어가 생겼다. 이제 산과 공원은 시간이 남아서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가는 필수적인 힐링의 장소가 됐다.

산을 이용하는 세태도 변화되고 있다. 산 정상에서 “야호~”하던 함성은 거의 사라졌고, “위하여~” 하던 음주도 많이 줄었다. 코로나시대에서 단체산행 보다는 삼삼오오 또는 나홀로 산행이 많아졌고, 정상을 향해 ‘땀 뻘뻘, 빨리빨리!’ 보다 한적한 코스를 택해 소풍가듯 산책하듯 하는 산행이 많아지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의 자연・문화해설, 산림청의 숲체험 등 다양한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는 사람접촉이 적은 ‘저밀접 탐방로’로 ①북한산성계곡-원효봉-보리사-북한산성계곡 4.7㎞ ②우이령 6.9㎞ ③아카데미하우스-구천계곡-대동문-진달래능선-수유동 3.7㎞ ④둘레길 명상길(정릉)-구복암 4.5㎞를 추천하고 있다.

이중에서 ①번의 북한산성계곡으로 올라 ③번의 진달래능선으로 내려가는 ‘산책같은, 소풍같은’ 산행에 나선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계곡과 산을 접하고, 역사도 배우고 꽃풍경도 즐기는 ‘슬로우 트래킹’ 길이다.

◇ 북한산성입구-중흥사 3.2㎞ “물소리 새소리 가득한 계곡길, 풍류 즐겼던 산영루”

주말 아침에 북한산으로 접근하는 지하철은 칼라풀한 등산복장으로 넘쳐난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출구로 올라선 버스정류장도 시끌벅적한 도떼기 시장이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만원버스에 꾸역꾸역 채워진 사람들의 눈빛이 불안불안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이십분쯤 꾸겨져 있다가 북한산성 정류장에서 와르르 쏟아져 내린 사람들이 일단 큰 숨을 내쉰 후, 성큼성큼 산으로 향한다. 언제나처럼, 왼쪽의 거대한 원효봉과 오른쪽의 뾰족한 의상봉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진입경관이 압도적이다.

상가와 공원입구를 지나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과 너른 보도를 따라 대서문을 통과해 오르는 길로 갈라진다. 두 길은 예전에 북한동마을이 있던 ‘삼거리 광장’에서 합류된다. 계곡으로 들어서자마자 깊은 계곡인 듯 커다란 암반 사이로 물 소리와 새 소리가 그득하다. 버스에서 내려 10분쯤 걸어, 도시의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빨리 자연에 들어서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흙길과 돌길과 나무계단이 짧게짧게 이어지는 계곡길을 30분쯤 오르면 예전에 마을이었던 넓은 광장이 나온다. 북한동마을은 북한산성을 축조하던 때부터 300년 이상 삶의 터전이었으나 계곡상류에서 주거와 영업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로 철거되어 공원입구 상가로 이주했다. 이곳에 남긴 북한동역사관에 마을의 발자취가 전시되고 있다. 너른 쉼터와 화장실이 있어,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하는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삼거리에 조성한 자생식물정원에 앉아, 더 올라가지 않겠다는 듯 한가롭게 ‘멍때리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백운대를 오르는 가파른 코스(2.6㎞)가 있고, 오른쪽으로 북한산 능선의 여러 곳으로 가는 완만한 계곡길(백운대 4.1㎞, 대남문 3.7㎞)이 있다. 백운대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왼쪽으로, 슬로우 워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른쪽 길을 택한다.

10분쯤 올라가 중성문(中城門)을 지나면, 왼쪽으로 노적사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200 걸음쯤 급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작은 절과 거대한 암봉의 대비, 자연과 문화의 대비가 극명한 풍경이다. 곡식을 쌓아둔 봉우리라는 뜻처럼, 황금빛 노적봉(露積峰)의 배가 불룩하다.

노적사에서 내려와 곧 비석거리와 산영루를 만난다. 바위에 삐뚤빼뚤하게 박혀 늘어선 비석들은 북한산성과 관련된 관료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돈을 들여 거짓으로 공덕비를 세운 것도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부서지고 넘어진 것도 있다.

산영루(山映樓)는 ‘물가에 비친 산을 보며’ 즐기는 누각이란 뜻이다. 건물을 밑에서 보면 하늘로 날아갈 듯 날렵하고, 위에서 보면 반은 길에 걸치고, 반은 계곡에 걸친듯 들어서 있다. 이도(以道)라는 문인이 “그윽한 풍경에 취해서 돌아가길 잊었네”라고 읊었을 정도로 경치가 좋았다 하나, 1925년 큰 홍수가 나서 누각이 다 쓸려나갔다. 2015년에 누각을 다시 세웠지만, 옛 정취와 풍류는 복원되지 못한 듯하다.

◇ 중흥사-용암문-대동문 2.5㎞ “중흥사에서 역사의 현장을, 용암문 성곽에서 삼각산 정상의 위용을 보다”

산영루 위에 중흥사(重興寺)가 있다. 이 절은 산성을 축조하고 행궁(行宮/왕의 피난처)을 지키기 위해 주둔하던 수백 명의 승병을 지휘하던 곳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스님군인이라니? 잦은 외침으로 나라가 위기에 있었고, 또한 불교가 억압받던 시대에 불교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유명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승병 총사령관이었다. 흔적만 있다가 이제 옛 면모의 일부를 되찾고 있는 절의 마당끝에서 산을 내다본다. 임금의 궁전과 군사시설이 들어섰던 요새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아늑하고 평화로운 자연이다.

북한산성과 행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축조한 왕의 대피시설이다. 막대한 예산과 노동력을 들여 행궁을 짓고 북한산성을 쌓았지만 실제 피난처로 쓰인 적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1915년, 1925년 두 번의 큰 홍수로 행궁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과 시설물, 사찰들이 무너져 내렸다.

북한산성 계곡 일원에 대한 옛사진들을 보면 산도 계곡도 모두 헐벗어 남루한 모습이다. 행궁과 군사시설과 절을 짓기 위해 많은 나무들을 잘라냈고, 가난한 백성들도 산에서 식량과 땔감을 구했으며, 그 여파로 홍수를 이기지 못해 산사태가 나지 않았나 상상해본다.

중흥사 위로 개울 건너, 등산로에서 비껴나 있는 태고사(太古寺)에 들른다. 고려 말의 국사(國師)였던 보우(普愚)스님이 지냈던 절이다. 스님이 지은 태고암가(太古庵歌)를 보면 낯익은 단어와 낯선 단어가 붙어있는 구절이 있다. ‘방하착(放下着) 막망상(莫妄想)’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헛된 생각을 말라”는 말이다. 나같은 속인으로선 실천하기 어렵다.

태고사에서 성곽이 있는 능선까지는 살짝 가파른 오르막이다. 한두 번 쉬면서 20분쯤 오르면 능선길에 인접한 용암사터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야 대동문이지만, 지척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를 보기 위해 왼쪽으로 200m 거리에 있는 용암문으로 가서, 유턴을 해서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노적봉-용암봉-만경대-인수봉의 하얀 암봉들을 멋지게 조망할 수 있다. ‘북한산 사령부’라고 부르는 바위성(城)이다.

성곽을 내려와 평탄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 동장대(東將臺)에 이른다. 이 2층 누각은 장군의 근무처로, 하늘로 치켜진 처마의 당당한 모습에서 건물 자체가 장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복원되었다고 말이 많은 건물이다. 동장대를 지나 곧 대동문에 이른다.

◇ 대동문-진달래능선-수유리 2.8㎞ “분홍 진달래, 하얀 삼각산 감상하며 힐링 하산”

대동문(大東門)은 북한산 능선에서 가장 많은 등산로가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다. 이정표 하나에 9개 지명이 붙어있다. 평소에는 곳곳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밥과 컵라면 파티가 한창일텐데, 코로나 여파로 머물지 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동문을 통과해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선다. 얼마나 진달래가 많고 예뻐서 진달래능선일까, 5분쯤 내려서니,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등산로 양옆에 가녀린 가지들이 얽히고 설킨 진달래들이 도열하기 시작한다. 금년에는 겨울가뭄과 꽃샘추위로 꽃피는 시기가 늦다. 가지 끝마다 하늘을 향해 열린 보랏빛 꽃망울들이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따듯한 봄비와 따가운 햇빛이 나무를 재촉하면, 곧 비밀스럽게 접은 붉은 꽃잎들을 차근차근 펴서 세상에 내보낼 것이다.

진달래는 북한산처럼 토양층이 얇고 양분도 적은 척박한 환경을 잘 견디며 자라는 나무다. 등산로와 숲의 경계에서 사람 발길을 견디며 숲 안쪽을 보호해주는 ‘가장자리 식물’이기도 하다. 이런 생태적인 고마움과 더불어 우리의 정서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한국의 나무’다. 영어이름도 ‘한국의 장미 korean rosebay’다.

진달래를 노래한 많은 문장 중에서 심훈의 소설 ‘영원의 미소’에서 묘사한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산기슭에 조그만 계집애들이 분홍치마를 입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듯한’ 꽃이라고 표현했다. 전국의 야산에 지천이었던 진달래가 우리의 향수를 달래고, 민족의 영혼을 일깨워주듯, 진달래능선의 끝에는 4.19 민주묘지가 있고, 그 주변의 수유리 산자락에 애국지사들의 묘역이 많다.

진달래능선은 북한산의 아래와 위를 이어주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시점과 종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드러운 경사이고, 건너편 능선 위로 솟은 삼각산 봉우리와 멀리 도봉산을 조망하는 포인트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우이동과 수유리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약간 가파른 길을 15분쯤 내려서면 곧 백련사다. 여기서 10분쯤 걸어 둘레길과 만나고, 곧 버스가 다니는 차도에 이르러 산행을 종료한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이곳까지 8.5㎞, 느릿느릿 쉬엄쉬엄 5시간쯤 걸렸다. 등산을 했다기보다는 편안한 산책로에서 맑은 공기와 봄 경치를 즐기고, 역사적 장소를 탐방했다. 뭔가 돌봄을 받은, 케어받은 느낌이다. 세계적으로, 자연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달래는 ‘자연치유’가 보편화되고 있다. 독일과 캐나다에는 의료처방(prescription)을 한다.
의사가 “공원에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셀프 처방’을 해도 좋다.
오늘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곳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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