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남자니까 월급 더 준다"…어떻게 '위법' 됐나

      2022.04.11 06:31   수정 : 2022.08.17 12:07기사원문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대법원 모습. 2020.12.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News1 DB


[편집자주]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남자직원들이 공장에서 무거운 걸 더 많이 옮기니까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직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줘야 한다"

지금은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불과 20년 전까지 상당수 회사의 임금체계는 이런 식이었다. 이 때문에 생산라인에 남녀가 함께 일을 하더라도 남자의 월급이 더 많은 것이 당연시됐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 여부는 관계가 없었다. 심지어 취업 규칙에 '성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 회사도 적지 않았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성별에 따른 명시적인 임금차별은 많이 사라진 상태다. 이렇게 시대정신이 바뀐 데는 2003년 대법원의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에 따라 임금 책정 기준을 달리 적용해선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동일가치노동에 관해 대법원이 내놓은 첫 판례였다.

◇"남성이 무거운 물건 더 운반한다고…임금 차별 정당화될 수 없어"

우리 법은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임금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규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9년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처음 개정되면서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그러나 현실은 곧바로 법을 따라가지 못했다. 성별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사업주는 여전히 존재했다.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에 관해서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었다.

2003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사건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평택에 위치한 한 타일제조업체의 대표 A씨는 1995년~1996년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일급을 다르게 지급해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를 놓고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이 업체 취업규칙에는 '종업원에 대한 임금은 성별, 학력, 연령, 경력, 기술 정도에 따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1심은 이를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노동가치의 동일성은 불문하고, 취업규칙만 보더라도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임금을 지불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해당 업체의 제조공정을 과정별로 나눠본 뒤, "여자 직원들은 특별한 기술이나 숙련도, 체력을 요하지 않는 업무인 반면, 남자 직원들은 무거운 기계나 원료를 운반, 투입해야 하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여자직원들이 담당해왔던 노동과 남자직원들이 담당해왔던 노동은 그 업무의 성질, 내용, 기술, 노력, 책임의 정도, 작업조건 등에 비춰 동일가치의 노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결론은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남성 노동자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고 취급하는 등 더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노동에 종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임금 차별 지급을 정당화할 정도로 '기술'과 '노력' 상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또 여성과 남성 노동자 모두 하나의 공장 안에서 연속된 작업공정에 배치돼 협동체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만큼 공정에 따라 위험도나 작업 환경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작업조건'이 다르다고 할 수 없고, 모두 일용직 노동자여서 '책임'의 면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 동일가치노동 정의·기준 처음 제시한 대법원…구체적 해석 내놔

이 판결은 여성과 남성의 동일가치노동을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또 법 조항으로만 존재했던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정의와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제시한 판결이기도 하다.

그간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기준은 법령상으로만 간단하게 규정돼 있었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선 동일가치노동 기준을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작업 조건 등 4가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외에 별다른 설명은 없다.

당시 대법원은 동일가치노동의 정의와 이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해석을 내놨다.

"동일가치의 노동이란 서로 비교되는 남녀 간의 노동이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성질의 노동 또는 그 직무가 다소 다르더라도 객관적인 직무평가 등에 의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노동을 말한다."

기준에 대해선 기술과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을 비롯해 학력, 경력, 근속연수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또 기술 등 4가지 조건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대법원은 '기술'이란 자격증, 학위, 습득된 경험 등에 의한 직무수행능력 또는 솜씨의 객관적 수준을 의미하고 '노력'은 육체적 및 정신적 노력과 작업수행에 필요한 물리적 및 정신적 긴장, 즉 노동 강도'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아울러 '책임'은 업무에 내재한 의무의 성격·범위·복잡성, 사업주가 당해 직무에 의존하는 정도를 의미한다고 봤고 '작업조건'은 소음과 열, 물리적·화학적 위험, 고립, 추위 또는 더위의 정도 등 통상적으로 처하는 작업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노동가치 조항을 명시적으로 적용을 하고 동일가치 노동을 해석하는 기준을 판결문에 설시한 한 첫 사례였다.

◇ 2011년 '콜텍 사건'…차별받은 임금 직접 청구 가능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8년여가 흐른 2011년 4월. 대법원에선 환호성이 들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차별받은 이들이 회사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임금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악기 제조회사인 콜텍에 다니는 여성 노동자들이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한 남성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그 차액을 지급하라고 민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 차별을 받고 있었는지 여부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넘어 임금청구권이 있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콜텍이 동일가치 노동에 대해 성별을 이유로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차별받은 임금 상당액을 직접 청구할 권리도 있다며 여성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2003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동일가치노동에 관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넘어, 임금차별의 피해자가 차별로 인해 받지 못한 임금을 직접 청구할 권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차별로 인해 받지 못한 임금 차액 부분을 어떻게 산정해야 할지도 관심이었다. 법원은 콜텍 내부에 기술과 노력 등을 기준으로 노동가치를 평가해 임금을 결정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차별이 가장 근접한 시기에 입사한 남성 근로자와의 임금을 비교해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임금차별 중요 기준 제시했지만…다른 직무끼리 비교한 판단은 아직 없어

이 두 가지 대법원 판결은 동일가치노동의 정의와 평가방법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임금청구권까지 인정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동일가치노동'을 평가할 기준은 아직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사건 모두 사실상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동일가치노동'이라기 보다는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차별에 대해서만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콜텍 임금차별 소송 판결의 의의'라는 논문을 작성한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두 사건은 동일가치의 노동인지에 대한 판단까지는 필요 없고 동일한 노동인지만 판단해도 됐을 사안"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판례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구 위원은 "앞으로 더 나아가 비서와 운전기사, 음악치료사와 약사 등 직무자체가 상이해도 가치를 비교해 임금이 상이한 것은 차별로 볼 수 있다는 케이스도 나올 필요가 있다"며 "경영계 등에선 직무가치 평가에 대해 통상적으로 쓰이는 방법론들도 있는데 이를 실제로 적용해 판단한 케이스가 없다는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2003년 작성된 대법원 판례해설에는 이미 이같은 한계가 담겨 있다.

당시 판례해설집엔 "우리나라의 임금은 남녀를 불문하고 합리적인 직무평가제도나 그 전제인 직무분석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동일가치노동인지를 비교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선 각 직무의 가치평가와 직무 상호 간 가치 비교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상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적혀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올 동일가치노동의 판단은 다시 법원에 맡길 수 밖에 없다. 판례해설집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현실에서 동일가치노동인지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법관에게 일임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첫 대법원 판결 이후 20여년…임금 차별 아직도 존재할까?

'남녀 임금차별 OECD 중 최하위' '남성 대비 여성 임금 66%' 여성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임금 차별을 받고 있다는 보도는 매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2020년 상장법인 전체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980만원, 여성 1인당 평균임금은 5110만원으로 격차는 35.9%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경우 27.8%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중소영세사업장이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상당히 다른데, 대기업에서는 배제의 기제가, 중소기업에서는 직접적 임금차별의 기제가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여성들이 고용기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사업주의 차별적 행동을 억제할 공적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라 김 교수는 분석했다.

실제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임금체계가 체계적이지 않고 감시할 수단도 없다. 실정법상 정부는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남녀고용평등법, 기간제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임금체계에 간섭할 수 없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노동자가 법원에 소송을 걸어 노동의 가치와 임금체계를 세부적으로 다 따져보지 않는 이상 차별이 있다고 알기조차 어려운 구조임 셈이다.

이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성별임금격차 공시제와 개별노동자의 임금정보 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임금격차 공시제는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성별에 따른 임금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공시를 하는 제도다.
독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임금정보 청구권은 개별 노동자가 자신과 같은 가치의 일을 하는 집단의 임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앞서 서울시의 경우 지난 2019년 3월 처음으로 서울시 투자 출연기관을 상대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한 바 있다.
실제 노동현장에 임금공시제가 도입된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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