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대북정책, 北 주민 먼저 봐야
2022.04.25 18:43
수정 : 2022.04.25 18:43기사원문
금강산 관광은 남북 협력의 상징이었다. 직접화법으로 말하면 금강산 관광인프라는 남한 국민들이 돈을 쓰는 곳이다. 북한 당국이 이 시설들을 들어낸 것은 앞으로 이를 통해 남측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의절' 통보다.
이는 자력갱생하겠다는 시위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깨진 뒤 2020년 초에 이미 그런 의지를 드러냈었다. 즉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번영해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면서다. 제재를 감수하며 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였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집권 초 발언을 뒤집은 셈이다.
북한은 올 초부터 최근까지 13차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도 포함돼 2018년 천명한 핵과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인 모라토리엄도 파기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의 셈법에 따르면 북한은 이를 위해 총 1억2000만∼1억8500만달러(약 1464억∼2257억원)를 썼다. 주민의 허기를 달랠 쌀 43만∼45만t가량을 살 수 있는 돈을 허공에 날린 격이다.
이처럼 인민의 삶보다 정권 안위가 최우선인 북한 체제의 속성이 하등 달라지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가 5년 내내 "삶은 소대가리" 등 막말을 들으면서 대화에 매달렸지만, 헛물을 켠 꼴이다. 금강산 관광시설이 사라지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파투 났으니….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역량(곧 평화파괴 능력)만 키워준 채로 말이다.
한반도 상공의 암운은 이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더 짙어질 참이다. '안정-불안정 역설'이란 국제정치 이론이 있다. 인접국의 핵 보유 시 전면전 위험은 줄어들지만, 국지적 충돌 위험이 외려 커진다는 게 이 이론의 요체다. 핵을 보유한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이 전면전을 겁낼 것으로 보고 마음 놓고 소규모 도발을 자행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추가 경제제재로 북한 주민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게 뻔하다.
이런 사태가 실제 상황이 되면 남북 구성원 모두가 북핵의 인질로 전락할 판이다. 3차례 정상회담을 갖고도 북한 정권의 핵 보유 의지를 못 읽은 문 정부의 실책이 그래서 뼈아프다.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고,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하며 김정은·김여정 남매의 비위를 맞춘 대가가 뭔가. 북한 정권은 끝내 레드라인을 넘고 애꿎은 북한 주민들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신정부가 북한 주민의 이런 고통까지 헤아리며 대북 정책을 리셋할 때다. 물론 김 위원장과의 대화의 끈을 놓으란 말은 아니다. 다만 신기루 같은 평화 이벤트에 연연한 현 정부의 전철을 답습해선 곤란하다. 공식회담에서든, 막후협상에서든 북한 정권에 "핵 포기가 정권과 주민을 함께 살리는 길"임을 명확한 어조로 전하란 뜻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두려움 때문에 협상해선 안되지만, 협상하기를 두려워하지도 말라"(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는 금언을 상기하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