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에너지정책서 불거진 '한전 민영화' 논란…실상은

      2022.04.30 07:01   수정 : 2022.04.30 07:01기사원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9일 오후 충북 청주 오창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공사 현장을 방문해 고인수 방사광가속기구축사업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2022.4.29/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김기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경제2분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4.28/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3월31일 서울시내 한 다세대주택 가스계량기 앞을 주민이 지나고 있다.

2022.3.31/뉴스1 © News1 DB


한국전력 전경. © 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발표 이후 한국전력의 민영화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사상 최악의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의 체질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과 '한전의 전기 판매 독점구조 개방' 안을 밝혔는데 후자와 관련, 사실상의 민영화 선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는 즉각 입장자료를 내 "(민영화는)사실과 다르다"라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전 민영화' 논란 확산에 인수위 "논의한 적 없어"



인수위 경제2분과 김기흥 부대변인은 지난 28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사상 최악의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전의 체질개선을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전기 요금의 원가주의 원칙을 정립해 생산비 인상요인 발생 시 어떤 정치·환경적 고려도 배제한 채 요금을 현실화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전기 생산에 드는 원가 상승 요인에도 정치·환경적 요인으로 요금 현실화가 어려워 심각한 재정난에 빠진 한전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또 다른 안은 한전의 전기 판매에 대한 독점구조를 개방해 국민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히고, 한전이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게 하는 방식인데 이를 두고 논란이 확산 중이다.

인수위 발표 직후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보도자료를 내 "인수위는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시장기반으로 적극 추진하고,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 계획을 밝혔다"면서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와 시장화 추진 계획을 명시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발표는 정상화라는 탈을 쓴 민영화 계획"이라며 "인수위는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정의로운 전환을 가로막는 에너지 민영화 계획을 철회하라"라고 촉구했다.

사태가 확산하자 인수위는 29일 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한전의 민영화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독점적 권한→시장경쟁 구조로"vs"민영화"…뭐가 다를까



인수위는 "한전의 독점적 전력 판매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전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어 "새롭고 다양한 전력 서비스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전력시장이 경쟁적 시장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이는 한전이 독점 중인 전력산업을 발전, 송배전, 판매 부문으로 쪼개고 경쟁을 도입하는 전력시장구개편이 곧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하나가 논란을 빚고 있는 민영화 방안으로 한전이 갖고 있던 기존 기능을 분리해 3자에게 분할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렬 경우 현재 정부가 보유 중인 한전 지분 51%도 매각해야 한다. 이 같은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전력 수급불안과 요금 폭등, 취약지역 서비스 중단 등의 우려가 높은 만큼 정부가 사회적 합의과정 없이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 다른 방식이 한전 홀로 맡던 기능을 3자에게도 수행하도록 시장을 자유화하는 방식인데 인수위는 이 같은 방안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전이 그대로 사업자로 존재하면서 다른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만큼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다. 주로 판매부문에 국한된 형태로, 소매시장을 개방해 다양한 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새 정부 경제정책 기조인 시장경제체제 형태로, 민간 경쟁체제 방식을 통해 경쟁력 확보를 꾀하는 방안이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는 30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인수위에서 발표한 정책방향은 공기업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면서 "탄소중립, 에너지믹스 등 다양한 에너지발전 기술이 등장하니 판매부문에서라도 여러 민간사업자들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시장경쟁력을 키우자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어 "설사 추진을 하더라도 정권 출범을 하기도 전에 문제를 꺼내 굳이 부담을 떠안으려 했겠느냐"면서 "다양한 사업자가 와서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한다 이런 차원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이런 시장 개방은 중장기적인 문제로, 당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전기위원회의 독립·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그 위원회에서 물가도 판단하고, 서민들의 경제수준, 원가 수준을 반영해 요금을 정하도록 하는 게 정치권의 부담도 없애고 요금 현실화를 할 수 있는 당면 과제인데 이 부분의 정책방향을 설정한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체질 개선은 중장기 과제…당장 급한 한전은 '자산 매각까지'



인수위가 한전의 재정 건전성 개선을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빨간불이 켜진 위기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올 들어 회사채 발행 규모가 넉 달 만에 12조원에 육박, 지난 한 해 전체 발행분 규모를 넘어서는가 하면 발전 공기업에 전력거래 대금을 늦게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칙도 개정했다.

발전 공기업에 지급해야 할 전력대금을 '외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으로, 한전의 심각한 재정난을 방증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거래소, 한전, 발전공기업 6곳 등은 최근 규칙개정위원회를 열고 '전력거래대금 결제일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한전이 발전공기업에 정해진 일자에 전력거래대금 지급이 어려울 경우 다음 차수로 미룰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주 내용으로 한다. 현행 규정상 한전이 대금을 납부해야 하는 시기를 지키지 못할 경우 채무불이행으로 간주돼 다음날 전력 거래가 정지되는데 재정난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한전의 재정난은 회사채 발행 확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 들어 발행한 회사채만 불과 넉 달 만에 12조원에 육박했다. 이미 지난 한 해 전체 발행분인 10조43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12일까지 한전이 발행한 회사채는 11조9400억원으로, 지난 2020년(3조5200억원)과 비교해도 무려 8조4200억원이 늘었다.

최근에는 해외 자산까지 매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필리핀 자산의 매각을 추진 중"이라며 "최근의 적자 확대로 인한 재무건전성 확보 차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전 측이 매각 여부를 고심 중인 곳은 필리핀 세부 화력발전소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일정이나 방법 등에 대한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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