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기민하게 대응하는 경찰·법원

      2022.05.01 14:55   수정 : 2022.05.01 17:0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헤어진 전 연인의 집 앞에 찾아가 만나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문을 두드리거나,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했는 데도 반복적인 연락을 한다면 과연 어떤 처벌을 받을까.

'스토킹=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면서 수사 당국과 법원 대응이 달라지고 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에는 경범죄처벌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기존에 있던 법에 범죄를 억지로 맞춰야 했다면 현재는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경찰청, 접근금지, 휴대폰 접근금지 등 4단계 대응 구체화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모두 스토킹 범죄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몇몇 스토킹이 결국 강력범죄로 비화되면서 경찰의 움직임은 한층 강화됐다. 지난해 3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딸을 스토킹하다 결국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역시 처음에는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집 근처를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전 여자친구인 40대 여성을 살해한 뒤 극단선택을 한 남성은 범행 사흘 전 스토킹 범죄로 입건된 상태였다.

스토킹 범죄는 단순히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거나 반복적으로 연락하는 행위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A씨는 한 취미동호회에서 B씨를 교제하다 헤어진 뒤 취미 동호회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B씨 차량 위에 올려두는 등 스토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미 과거 동종범죄 전력이 있었던 B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1년,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강의 명령이 선고됐다.

반복적인 연락 뿐 아니라 특정 인물을 연상할 수 있는 물건을 피해자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두는 것 만으로도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판단해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 사례다.

경찰청은 '스토킹 대응 매뉴얼'에 스토킹 범죄 사례를 업데이트해 5월 중 일선 경찰서에 배포할 예정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에 맞춰 대응 매뉴얼을 일선서에 배포한 이후 수차례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해 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간 축적된 법원 확정판결 사례를 통해 단계별로 어떤 조치들이 이뤄졌는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스토킹 혐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조치는 잠정조치다. 이는 스토킹 범죄가 재발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스토킹 행위자에 대해 즉각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서면 경고, 피해자 주거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 1~4호까지 청구할 수 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법원에 2469건의 잠정조치를 신청했고, 법원은 청구된 잠정조치의 83.9%에 해당하는 2073건을 인용했다. 법원은 같은 기간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당일 접수된 잠정조치에 대해서는 대부분 당일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전에는 다른 법률을 적용해 어떻게든 스토킹 범죄에 대해 끼워 맞추기를 했다면, 현재는 법적 근거가 생기다 보니 단 한 차례 피해자를 찾아가는 행위에 대해서도 서면경고 등 잠정조치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잠정조치 위반하면 최대 징역 2년
잠정조치를 위반하면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징역 2년에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실제로 전 연인에게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지만, 이를 위반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C씨는 전 연인 D씨의 주거지와 직장,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처분을 받았지만, 불과 열흘 만에 또 다시 D씨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반복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결국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스토킹처벌법 시행은 스토킹 범죄 대응의 첫걸음일 뿐, 피해자 보호 등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토킹 범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 가해자를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 피해자 입장에선 가해자의 합의 요구 자체가 공포다.


장희진 지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해자를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보니, 합의를 요구하면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각서 한 장과 가해자의 처벌을 맞바꾸게 된다"며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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