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천상의 별로"…故강수연, 영화인들 눈물 속 영결식·발인(종합)
2022.05.11 12:12
수정 : 2022.05.11 14:27기사원문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장아름 기자 =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 영화를 비추면서 끝까지, 더 화려하게 우리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배우 고(故) 강수연의 영결식 및 발인이 동료 및 선후배 영화인들의 배웅 속에 끝났다.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11일 오전 10시 고인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의 사회는 배우 유지태가 맡았고, 생전 고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임권택 감독, 배우 문소리, 설경구, 고인의 유작 넷플릭스 영화 '정이'의 연출자 연상호 감독이 추도사를 맡았다.
그밖에 예지원, 김현주, 정우성, 엄정화, 김아중, 정웅인, 방은진 감독, 연상호 감독, 이창동 감독, 정지영 감독,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배급사 엣나인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의 모습도 보였다.
영화인들은 1시간 가량 진행된 영결식에서 고인의 과거의 모습이 나오는 영상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결식이 말미에는 한 명씩 줄을 서서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영결식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발인이 거행됐다. 운구의 맨 앞쪽에는 설경구와 정우성이 섰고, 그 뒤를 여러 영화인들이 따랐다. 운구차가 떠나자 많은 고인의 동료 및 선후배 영화인들이 눈물을 흘렸다. 방은진 감독과 예지원, 김아중은 서로 손을 맞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김현주, 엄정화 등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강수연은 지난 7일 오후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병원에 이송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 "뭐가 그리 바빠 서둘렀느냐"
고인과 각별했던 김동호 위원장·임권택 감독 '눈물'
영결식에선 장례위원장이었던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가장 먼저 추도사를 읽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 배우 강수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 보내드리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김 위원장은 "수연씨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내 곁을 떠나다니 그때 당시 얼굴색도 좋았고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라며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가 있는가요"라고 애통해 했다.
김동호 이사장은 고인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사장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었다. 그뿐 아니라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한국 영화계의 동료로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김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연씨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시간 머물면서 영화제를 빛내주는 별이었고 상징이었다,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 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며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잘 버티면서 더 명예롭게 더 스타답게 잘 견디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은 억세고도 지혜롭고도 강한 가장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왔고 동생을 잘 이끌어왔다"며 "타고난 범접할 수 없는 미모, 구력을 갖추면서 남자 못지않은 리더십(지도력)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뒤따르게 하면서 살아왔다"고 고인의 생애를 기렸다.
또한 "이제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강수연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누구나 믿고 기뻐했다,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처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정착하고 그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비록 강수연씨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나서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 영화를 비추면서 끝까지 더 화려하게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다, 강수연씨 부디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동호 위원장만큼, 고인과 각별했던 임권택 감독도 추도사를 읽기 위해 나왔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긴 말 없이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서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렀느냐, 편히 쉬어라"라고 짧게 말한 후 눈물을 닦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 설경구 "나의 사부…당신의 조수여서 행복했습니다"
문소리·연상호 감독도 눈물의 추도사
고인이 아꼈던 후배 배우 설경구, 문소리도 추도사를 준비했다. 영화 '송어'(1999)에서 강수연과 함께 했던 설경구는 "통화하면서 보자고 했었는데, 할 얘기가 많아서 빨리 보자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 하는 날인데 지금 내가 선배님의 추도사를 하고 있고 이제는 볼수가 없으니 너무 서럽고 비통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통해 했다.
설경구는 과거 '송어'를 찍을 당시 강수연이 배우와 스태프들의 회식을 항상 챙겼으며, 늘 자신을 데리고 다니며 직접 영화에 대해 알려주고 가르쳐준 사실을 밝혔다. 그는 "나는 ('송어' 현장에서) 선배님의 막내고 선배님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저에게 앞으로 계속 영화를 할 거라는 희망을 주셨다"며 "저는 영원한 연기부 조수, 선배님은 저의 영원한 선수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은 모든 배우를 아끼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우리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다, 새카만 후배부터 한참 위 선배님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그것이 어색하지 않은 거인 같은 대장부"라며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우셨던 선배님,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고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너무 안타깝고 비통하다, 선배님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설경구는 "영화인 각자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언제든 어디든 어느 때든 찾아와 달라"며 "감독님, 스태프와 함께 해주시고 행복한 촬영장, 극장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해 달라,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주신 사랑과 염려 배려와 헌신, 영원히 잊지 않겠다, 사부와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조수 설경구"라고 덧붙여 장내를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문소리도 울먹이며 추도사를 읽었다. 그는 "친구 집에 있을 때 언니가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듣고 허망한 마음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친구가 '청춘스케치' LP를 들고 나왔다"며 "우린 한참 그 LP를 들었다"고 전하며 고인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당시를 회상했다.
문소리는 "라일락 꽃향기가 나는 길에서 하늘을 보며 언니가 가는 길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영화의 세계라는 게 땅에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에서 많은 분들과 영화 한편 하시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문소리는 "언니 잘가요,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을게요"라며 "언니 얼굴, 목소리도 잊지 않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끝으로 문소리는 "여기서는 말 못했지만 이 다음에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라고 말하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고인의 유작 '정이'의 연출자 연상호 감독은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 아우라 가진 강수연 선배님과 이 영화('정이')를 함께 하고 싶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 끝에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하셨을 때 뛸 듯이 기뻤다"며 "마치 저에게 든든한 '백'이 생긴 것 같았다"고 강수연을 추억했다.
이어 연 감독은 "그 당시에 촬영하면서도 강수연이라는 거대한 배우와 제가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될 줄 몰랐다"며 "나는 이 영결식이 끝나고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새 영화 고민을 해야한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울먹였다.
더불어 연상호 감독은 "한국 영화 자체였던 선배님, 선배님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배님의 새 영화를 보여드리기 위해 동행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늠의 든든한 '백'이 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해외 영화인들도 영상을 통해 고인을 애도했다.
제니퍼 자오 대만영상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신은 영화계에서 영예가 빛났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인들에 모범이 돼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에게 보여주셨던 우정과 다정함을 통해 당신을 존경했고 그리워하고 있다"며 "다른 세상에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전하며 비통해 했다.
말레이시아 차이밍량 감독은 정적 속에서 애통해 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보내며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드러냈다.
더불어 배우 양귀매는 "생명이란 것이 참 허무하다"고 운을 뗀 후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양귀매는 "당신은 최고의 영화예술가이며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친구였다"며 "산을 따라 아름다운 곳으로 가길 기원하겠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눈부신 여신"이라고 전하며 고인을 향한 존경심도 드러냈다.
◇ '월드 스타' 강수연…영화인들 배웅 속 영원한 안식으로
강수연은 아역배우로 데뷔해 '고래 사냥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해 청춘스타 타이틀을 얻었다.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한국 배우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어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하며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로 약 10년 만의 연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정이'는 최근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강수연의 장례는 지난 8일부터 영화인장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다. 장례고문은 박중훈, 손숙, 안성기, 임권택 등 11명이며, 장례위원은 봉준호, 설경구, 예지원, 유지태, 전도연 등 49인이다. 영결식과 발인 히우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추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