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추억은 그대로 맛은 고급스럽게… 분식의 변신은 무죄

      2022.05.12 17:57   수정 : 2022.05.12 17:57기사원문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맛 가운데 하나가 '추억의 맛'이다.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이 으뜸이지만 학창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먹던 음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화학조미료 MSG가 많이 들어갔으리라 짐작하지만 '쇠도 씹어 먹을' 청춘에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초딩 입맛'의 아내와 함께 '추억음식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메뉴는 떡볶이, 김밥, 쫄면, 우동, 돈가스, 튀김 등 누구나 좋아할 법한 국민 간식들이다.
프리미엄 분식으로 손꼽히는 스쿨푸드에서 주문하기로 한다. '분식도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고급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에서 탄생한 브랜드라니 기대가 된다. 메뉴를 쓰~윽 훑어본 딸아이가 우정출연을 자청한다. 전부 딸아이도 즐기는 음식이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고르는 와중에 뜻밖의 손님들이 등장했다. '평소 스쿨푸드를 좀 먹어봤다'는 처제들과 조카딸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졸지에 추억여행은 '추억파티'가 될 운명에 놓였다. 내 지갑이 가벼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날치알·스팸·통새우… 골라먹는 재미 마리

'마리' 시리즈는 스쿨푸드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다. '톡톡 날치알 마리' '통새우마리' '김치마리' 등 모두 14가지나 된다. 다시마를 넣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햄(스팸), 새우, 김치, 돈카츠, 참치 등 각종 식재료를 넣어 유기농 김으로 감쌌다. 김밥과 비슷하지만 얇게 만들어져 한 입에 쏙~ 먹기 편하다. 입이 작은(?) 딸아이에게 딱이다.

주인이라는 티를 팍팍 내면서 우리 세 식구가 먼저 입맛대로 하나씩 고른다. 딸아이가 돈가스 마니아답게 제일 먼저 '통살등심 돈카츠 마리'를, 매운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매니아 고추멸치 마리', 나는 내용물이 가장 풍부해 보이는 '모짜렐라 스팸 계란 마리'를 각각 선택했다.

비주얼 만으로도 나의 판단은 정확했다. 스팸 마리 위에 치즈를 말고, 그 위에 다시 계란을 말았다. 단무지도 없는데 약간 짭짤하다. 부드러운 계란과 치즈가 전체적인 맛을 살려낸다. 지난해 기준으로 스쿨푸드 딜리버리 전체 메뉴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데는 이유가 있다. (작은 처제의 권유에 따라)동봉된 마요소스에 찍어 먹으니 두 배로 맛있어진다.


‘분식’ 하면 OOO… 추억의 길거리표 떡볶이

하지만 떡볶이 국물이라면 맛은 세 배, 네 배가 된다. 어묵으로 살포시 감싼 후 떡볶이 국물에 푸~욱 담궜다가 입 안으로 직행한다. 말이 필요 없다. 두 손 모두 엄지척이 아깝지 않다. 스쿨푸드의 떡볶이 가운데 '길거리표 떡볶이'보다 어묵이 많은 '의성마늘떡볶이'가 제격이다.

'통살등심 돈카츠 마리'는 식감을 더해주는 짠지에 상큼한 무순이 들어 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구성이다. 통째로 씹히는 돈가스와 안에 들어있는 재료들의 조화가 굉장히 좋다. '매니아 고추멸치 마리'는 의외다. ('알싸하게 맵다'는 후기를 여럿 봤는데)생각보다 맵지 않다. '맵찔이'도 거부감이 전혀 안 생긴다. '초깔끔한 맛'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다. 특히 '모짜렐라 스팸 계란 마리' 이상으로 마요소스와의 궁합이 좋다. 세 가지 마리 가운데 제일 매력적이다.

떡볶이 맛으로만 치자면 '길거리표 떡볶이'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적당히 맵고 달달한 것이, '내가 아는' 떡볶이 맛에 가장 가까워서다. 이건 2인분을 사왔어야 했다. 달랑 어묵 3개, 떡 하나를 집어 먹었을 뿐인데 그릇이 깨끗하다. '매운 까르보나라 떡볶이'도 젓가락을 부르는 마법이 있다. 매콤함이 느끼함을 잡아주는 가운데 달콤함이 더해졌다. 떡볶이에 간이 잘 배어 풍미가 작렬한다. 2008년 출시 이후 600만 그릇 넘게 팔렸다니 이미 맛은 검증된 셈이다. 이쯤되면 '맥주 한 잔'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든든한 한끼로 손색없네… 덮밥·비빔밥

‘미나리 제육덮밥'은 오늘의 메뉴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를 내줄 만하다. '혼밥하는 이들에게 이 만한 메뉴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직장인들에게 인기 많은 제육덮밥에 상큼한 미나리를 더해 맛도, 식감도 한층 깊어졌다. 첫 인상은 짙은 소스의 색깔 때문에 짜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냥 '딱'이다. 양파, 당근도 실하게 들었다. 반숙으로 올려진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서 쓱~쓱~ 비비면 고소함이 추가된다. 밥알 하나하나가 아주 부드럽게 다가온다. '매콤한 김치가 생각난다'고 하니 작은 처제가 "김치까지 넣은 '미나리 제육김치덮밥'도 있다"고 알려준다. 스쿨푸드를 한 번 더 맛볼 핑계가 생겼다.

'장조림 버터 비빔밥(간장맛)'은 계란프라이가 비빔밥을 살포시 덮고 있는데 그 위에 후리가케(혼합분말조미료)가 뿌려져 있어 첫 인상은 별로다. 하지만 맛은 평타 이상이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하다. 밥은 고슬고슬하고, '오도독' 씹히는 장아찌가 식감을 한 단계 높여준다. '장조림 버터 비빔밥'은 딱히 어른이든, 아이든 호불호가 갈릴 일은 없을 성 싶다. 무엇보다 버터 맛이 강하지 않아 느끼함은 1도 없다(아내는 버터 맛이 예상보다 약하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매콤한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하얀 쫄면·아삭한 식감 듬뿍야채 쫄쫄면·매콤 시원 냉면까지

'어간장 육감쫄면'은 딸아이가 사실상 독차지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돈까스(통살등심 돈가츠 마리)에도, 떡볶이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기사 작성을 핑계로 통사정한 다음에야 겨우 한 젓가락 얻어 먹었다. 빨간 소스의 쫄면에 길들여진 탓에 '하얀 쫄면'의 비주얼 만으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처음 접하는)제주어간장과 불맛 가득한 구운 돼지고기, 부추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맛을 낸다(현실은 돼지고기 한 점과 쫄면 한 젓가락에 부추는 '몽땅'이라 부추맛이 조금 강했다). 하지만 담백한 듯하면서도, 단맛과 감칠맛의 절묘한 조화는 감탄사를 부른다. 특히 고기가 부드럽고 양념이 잘 됐다. 고기만 따로 팔아도 자주 사 먹을 성 싶다. 이 맛을 글로는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직접 맛을 보면 안다'고 할 수밖에.

'듬뿍야채 쫄쫄면'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메뉴다. 살얼음이 동동 떠 있어(?)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하다. 그 맛은 마성의 새콤달콤이다. 콩나물, 오이 등 각종 야채가 이름처럼 듬뿍 들어 있어 식감도 아주 그만이다. 얼음 덕분인지 면이 뭉쳐지지 않아 더욱 좋다.

아차, '매니아 냉면'을 빼먹을 뻔 했다. (먹어 보지 못한 탓에)여전히 그 맛이 궁금하다. '냉면 애호가'로 손꼽히는 아내가 골랐다. 외모는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중간인데 아내도 첫 만남이란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고, 빨개서 놀랐다"면서도 한 젓가락 나눠줄 아량은 없어 보인다.
"처음 먹는 데도 익숙한 맛이다" "짜거나 달거나 하는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살짝 매콤하면서 시원하다" "입맛을 돋궈 주는 그런 맛이다. 스쿨푸드는 정말 양념이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아내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 스쿨푸드를 자주 찾아야 할 듯 싶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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