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하나에 5개 부처가 간섭… AR·VR 성장 막는 규제
2022.05.15 18:26
수정 : 2022.05.15 18:26기사원문
#.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가상현실(AR)·증강현실(VR)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게임산업법, 관광진흥법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유원시설에 설치된 VR 시뮬레이터는 전체이용가 등급의 게임물만 제공할 수 있다. 도심에서 VR 시뮬레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기타 유원시설에 탑승 가능한 인원은 5인 이하로 제한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핵심 경제정책 어젠다로 꺼낸 건 기업규제 완화였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뿌리 뽑고, 박근혜 정부도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짓고 규제를 풀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핵심 정책으로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업규제 해소를 약속한 것과 달리 산업계의 우려에도 중대재해처벌법 및 '기업규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제정, 주52시간제 시행,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강행하는 등 5년 내내 '친노조·반기업' 기조로 일관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산업환경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갖기 위해선 신산업 기업들이 성장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혁신적 규제완화책을 꺼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신산업 성장 막는 포지티브 규제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가경제가 발전하는 수준에 비해 정부 당국의 규제인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최근 발표된 전 세계 주요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엄격한 규제정책의 민낯이 드러난다.
지난 2019년 기준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지수를 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1개국 중 13위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반면 규제부담 수준은 87위로 평균을 밑돌았다. 지난해 프레이저재단에서 발표한 세계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17년 7.6점에서 2019년 7.4점으로 2년 연속 하락했다. 2021년 세계혁신지수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은 132개국 중 종합 5위를 차지했으나 제도분야 세부항목 중 규제환경 순위는 57위에 머물렀다.
한국이 '규제 공화국'이란 오명을 쓴 데는 현행 포지티브(원칙금지·예외허용) 규제방식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에 비해 규제를 푸는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글로벌 신산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계도 열거주의에 입각한 사전규제 방식인 포지티브 방식이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새 정부에 네거티브 규제 체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부처 갈등, 의원입법에 규제 봇물
정부 부처 간 갈등도 규제개혁을 막고 있다. 개별 부처가 독자적으로 풀 수 있는 규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례가 상당수다. 한 부처가 기업경영 또는 산업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개선하려 해도 타 부처에서 이를 막아서면 규제를 풀 방법이 사실상 없다. 부처가 규제 현안을 조율해야 할 총괄기관의 부재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등 규제 및 혁신성장을 담당하는 조직들의 업무기능이 분산되면서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운영하는 규제개혁포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인 2017년 5월 9일~2022년 5월 9일 규제 신설·강화 내용을 담은 의원법안 발의 건수는 4137건으로 집계됐다. 박근혜 정부 임기(2013년 2월 25일~2017년 5월 8일) 내 1313건과 비교하면 3배 이상에 달한다. 의원안에 대해 규제영향 분석을 실시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의원의 입법권 침해를 이유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 정부는 규제혁신 및 규제완화를 위해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선진국 제도를 따라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적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