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와 이주민의 도시
2022.05.17 07:00
수정 : 2022.05.17 07:00기사원문
(서울=뉴스1) = 최근 TV 시리즈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소설 '파친코'(Pachinko)는 낯선 땅에 정착한 이방인이 겪는 구조적 차별과 배척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없었던 재일 한국인들은 경제적 부를 일구기 위해 일본인이 천시하여 멀리하는 파친코 장에 뛰어들었다. 주인공 선자의 아들들이 젊어서부터 일하거나 아니면 중간에 학문을 그만두고 선택한 곳도, 미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손자가 돌아온 곳도 결국은 파친코 장이다.
우리나라가 세계화를 정책 아젠다로 설정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반강제로 세계적 자본주의 체계에 편입되게 된다. 이후 자본이나 물적 자원의 국가간 이동 외에도 사람들의 이동도 크게 늘었다. 법무부 체류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장기 또는 단기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1998년 30만8000여명에 불과하였으나 2020년 203만6000여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98년 0.66%에서 2013년 3.0%를 넘어 2017년 4.2%, 2018년 4.5%, 2019년 4.9%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3.93%로 감소하였으나 이제 외국인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더 나아가 이민자들은 우리나라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경제에도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민자 체류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15세 이상 귀화허가자를 포함한 이민자 상주인구는 138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민자의 90%는 아시아에서 왔으며, 한국계 중국이 52만여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19만여명, 중국 13만여명, 기타 아시아 39만여명이다. 이들은 주로 광·제조업(43.3%), 도소매·음식·숙박업(18.9%), 사업·개인·공공서비스(16.3%), 건설업(11.9%), 농림어업(7.1%) 등에 종사하고 있다.
도시의 관점에서 외국인의 증가는 도시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힘이 될 수 있다. 경영전략가 게리 하멜(Gary Hamel)은 저서 <경영의 미래>에서 다양성은 여러 곳에서 유입된 사람들과 더불어 발견과 발명의 연쇄반응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도시계획운동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도시가 성장하는 이유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에서 찾는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사고만으로 창조적인 변화를 만들기 곤란하며, 다양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교류를 증가시키면서 더 넓은 사고의 폭과 새로운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과 활력은 화려한 도시가 아닌 일손이 필요한 농촌, 공장, 건설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에 외국인이 유입되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외국인의 경제적 활동으로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며, 이는 낙후된 지역의 토지 및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쳐 도시의 모습과 공간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외국인의 증가는 지역에 긴장감과 대립을 불러올 수도 있다. 외국인 이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이주민 의존도가 매우 커 한국인과 이주민이 경제공동체로 끈끈하게 묶여 있더라도 그들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같이 살고 있으나 같이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의 외국인 쏠림현상이 강해지면서 내국인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며, 익숙했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적대적 감정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갈등과 충돌을 가져온다. 처음에는 노동력 공급 차원에서만 바라봤던 외국인 노동자의 역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경제적 영향과 사회통합의 차원으로 복잡해진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민 10명 중 1명 이상 외국인인 곳들이 있는데, 전국에서 외국인 주민 비율이 높은 지방자치단체는 2020년 기준 충북 음성군(14.6%), 서울 영등포구(13.5%), 서울 금천구(13.1%), 경기 안산시(13.1%) 등이다. 이들 지역은 이주민이 많은 곳에 이주민이 몰리는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이주민들의 도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산의 원곡동, 서울의 대림동 등 이주민들의 집단거주지로 변화되고 있는 곳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정책적 노력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주민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당면할 문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진전이 없어 보인다.
이주민 증가와 다문화는 필연적인 우리의 미래다. 찬성하거나, 반대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변화와 발전은 현재 5%의 한국을 구성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증가하게 될 외국인들과 그들과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모습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집은 있다. 소설 <파친코> 속의 뿌리 깊은 차별과 배타적인 사회구조에 저항하면서 꿋꿋이 살아내는 선자네의 삶을 보며, 집을 떠나 우리 사회에 들어온 또 다른 선자네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도시도 사람도 모두 진화한다. 낯선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이 어떨지,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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