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국채, 28년만에 최대 손실...중국도 최악의 자본이탈에 직면
2022.05.29 05:22
수정 : 2022.05.29 05:22기사원문
신흥국 국채가 약 30년만에 최대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과 예고에서 비롯된 전세계 금리 상승, 성장둔화,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망 차질 심화 등의 충격이 신흥국들을 강타한 것이다.
■ 1994년 이후 최악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이하 현지시간) 달러표시 신흥국 국채 기준물인 JP모간EMBI글로벌다변화 지수가 올들어 마이너스(-)15%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수일 전세계 금융시장이 단기 랠리를 이어가기는 했지만 최악의 실적에서 벗어나는데는 실패했다.
투자자들은 신흥국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EPFR에 따르면 전세계 신흥국 뮤추얼펀드와 채권상장지수펀드(ETF)에서 올들어 약 36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신흥국 주식시장에서도 이달부터 자금 유출이 시작됐다.
신흥국들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타격이 심하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여기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치솟고, 전세계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면서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같은 압박을 가중시켰다.
이런 와중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 빠지듯 빠지면서 유동성 압박이 심화하게 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글로벌리서치의 신흥국전략 책임자 데이비드 헌터는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헌터는 "전세계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통화정책 담당자들이 연일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높은지를 언급해 시장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큰 그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는 추가 통화긴축을 예고하는 것으로 중앙은행들이 경제나 시장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때까지 긴축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역 달러 캐리트레이드
아문디의 글로벌 신흥국 부문 책임자 예란 시지코프는 연준 등의 금리인상으로 비롯된 미국 같은 선진국 시장의 고금리로 인해 신흥국 국채가 이전보다 덜 매력적이 된 것이 자금 이탈 근본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 금리를 크게 웃도는 신흥국 채권의 고금리에 기대 금리차를 노리고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 신흥국에 투자하는 이른바 달러 캐리트레이드가 역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지코프는 올해 캐리 트레이드를 진행했다면 "잘 해야 본전, 최악의 경우에는 손실을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BoA의 헌터는 미국 등 선진국의 금리인상이 경제성장과 동시에 진행됐다면 신흥국에 반드시 역효과를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 속에서 금리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신흥국에는 부정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헌터는 설명했다.
■ 세계 최대 신흥국 중국, 심각한 자금 이탈 직면
국제금융협회(IIF) 이코노미스트 조너선 포턴은 세계 최대 신흥국인 중국이 역대 최악의 자산 매도세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계 주요 은행들의 모임인 IIF는 국제 자본 이동을 추적하는 곳이다.
포턴은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자극받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지정학적 위험까지 더해져 투자자들의 불안이 극도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는 당국의 제로 코로나19, 이른바 칭링정책으로 상하이 등 대도시가 봉쇄되면서 성장이 급격히 둔화된 상태다.
포턴은 중국 주식과 채권이 글로벌지수에 편입되면서 펀드매니저들이 자동적으로 비중에 맞춰 이들 자산을 펀드에 포함시키기 위해 매수하는 이른바 '수동적 자금유입'이 지난 2년간 진행됐지만 지금은 흐름이 역전됐다고 지적했다.
IIF에 따르면 올들어 자금유입은 유출로 전환돼 3월과 4월 중국 채권에서 130억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다. 또 같은 기간 중국 주식에서는 50억달러 넘는 돈이 유출됐다.
포턴은 올해 말까지 중국 자산에서 자금이탈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원자재 수출국에 자본 몰려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예전 같으면 다른 신흥국에 유입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올해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신흥국 가운데서는 원자재 수출국 일부가 득을 보고 있다.
애버딘(Abrdn)의 신흥국 채권 부문 책임자 브렛 디멘트는 신흥국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크고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헝가리가 발행한 국채는 올들어 18%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세계 주요 산업재·식량 수출국인 브라질 국채는 16% 올랐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