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수난
2022.05.31 18:34
수정 : 2022.05.31 18:34기사원문
필자는 루브르박물관을 두 번 갔지만 두 번 다 멀찌감치서 눈도장을 찍고, 사진을 찍은 뒤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림 앞에 몰린 구름인파를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그림 앞에는 펜스가 둘러쳐 있고, 방탄유리에서 나오는 반사광 때문에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박물관 측은 줄을 서서 차례대로 보도록 관람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또 나홀로 관람권을 경매에 부쳐 팔기도 했다.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1911년 20세기 최대의 명화 도난사건이 일으켰다는 게 정설이다. 파리 경시청은 즉각 루브르박물관을 폐관하고,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다. 그림이 걸려 있던 빈 공간을 보기 위해 파리 시민들이 줄 지어 섰다. 거액의 포상금이 걸렸다. 화가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됐다. 이때 실연한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라는 명시를 남겼다.
2년여 뒤 이탈리아인 빈센초 페루자가 절도범으로 검거됐다. 보호액자 제작담당 유리공이었던 그는 "화가가 이탈리아인이니 작품이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와의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국민적 영웅 대우를 받았다. 모나리자가 5월 29일 극단주의 성향의 환경주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에 의해 케이크 테러를 당했다. 모나리자를 감싼 유리패널 위에 케이크 크림이 묻은 영상과 사진이 나돌고 있다. 1956년에는 황산테러를 당해 그림 아랫부분이 심하게 손상되는 등 이전에도 여러 번 수난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미소는 여전히 오묘하다니 다행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