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정치를 회복하자

      2022.06.01 19:48   수정 : 2022.06.01 19:48기사원문
지난해 3월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은 '전격 사퇴'라 표현했지만 올 3월 9일 대선을 생각한 사퇴였다고 본다. 최강욱 의원 등이 검사·판사 퇴직 후 1년 동안 출마를 제한하는 이른바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추진하던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라 생각한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볼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사퇴의 변은 그대로 출사표였다. 헌법정신, 법치주의, 정의와 상식, 자유민주주의는 윤 대통령의 상징적 키워드 아닌가. 대선이 사실상 그때 시작되었다고 보면 어제까지 나라 전체가 1년 넘는 동안 선거에 휩쓸려 왔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근접한 탓도 있지만 '질 뻔한 선거' '이길 뻔한 선거'도 큰 이유였다. 승리한 쪽도 마음을 놓을 수 없고, 패배한 진영도 포기할 수 없는 심리가 지선을 대선 연장전으로 만들었다.

지루한 선거전의 후유증은 크다. 오랜 정치적 내전 결과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을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소셜미디어에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증오의 언사가 차고 넘친다. 정치권에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들마저 우정 대신 극단적 진영대결 편을 서슴없이 택하곤 한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평소의 합리적이고 냉철한 모습과는 너무 다른 지인들을 보며 놀랄 때가 많다. "멀쩡한 사람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게 선거"라거나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넘어간다"는 말이 사실이지 싶다. 심지어 '탄핵' '전쟁' 운운하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선거 국면에서 멀쩡한 국민이 정치로 인한 '심리적 내전'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이러한 극단의 정치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당에 폭도들이 난입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팬덤 정치'라고 부르지만 경기장에 난입하는 극단적 훌리건들이 정치 과정을 점령하고 있다. 문자폭탄 등 '양념'을 넘어 음식을 망치는 먹물을 뿌려대는 소수 강경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협상, 조정, 타협 등 정상적인 정치가 실종된 지 한참 되었다.

이제 전쟁 같은 선거는 끝났다. 다행히 내후년 총선까지 큰 선거는 없다. 선거가 아니라도 정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청와대·김포공항 이전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상의 국정 운영은 물론 지방선거 후보자의 공약처럼 동네 주차장 만들기, 지하철역 설치 등도 정치가 살펴야 할 일이다. 선거 결과를 보며 일상의 정치 과정을 회복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민주주의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두 가지 규범을 제시한다.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가 그것이다. 승자는 환호 대신 자중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패자는 국민의 선택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겸손함이 필요한 때이다.
"경쟁자가 사라지면 경기도 끝난다"는 말을 모두가 곱씹을 필요가 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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