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독서시장
2022.06.07 10:36
수정 : 2022.06.07 10:3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19년 말 중국으로부터 바이러스 유행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지 2년 6개월 가량이 됐다.
조심스럽게 일상회복이라는 말을 꺼내면 또다시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을 뒤로 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코로나19가 독서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종합해 교보문고가 독서시장에 변곡점이 된 코로나 시기에 의미를 찾아 보았다.
■ 힘들 줄만 알았던 독서시장, 대부분 분야가 상승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지만 도서시장은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반면 나머지 분야에서는 평균 20%의 판매 신장을 보였다. 경제경영은 45.3%로 가장 많은 판매신장률을 보였고, 그 다음으로 중고학습이 43.4%, 초등학습이 43.3%로 뒤를 이었다. 2019년 대비 2022년 판매량을 비교하면 2배에 가까이 늘어난 분야도 더러 있다.
코로나 기간 중에 가장 수혜를 받은 분야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경제/경영 분야다. 각국 정부들의 엄청난 금리정책과 재정정책으로 경기부양에 나섰고 넘쳐난 자본의 유동성은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NFT, 아트투자 할 것 없이 경제적 가치를 이끌 수 있는 시장에 불을 붙였다. 각종 시장에 진입하는 입문자들을 위한 재테크 입문서가 경제경영 분야의 활황을 이끌었고, 2021년에는 학습서를 뺀 단행본 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매비중(9.0%)을 차지했다.
개학이 늦춰지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습과 관련한 분야가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중고학습, 과학, 청소년, 가정생활 분야 내 자녀교육서와 같은 학생들을 위한 학습관련서가 즉각 반응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자기계발, 기술/공학, 컴퓨터 분야 등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서들의 판매량이 큰폭으로 증가해 학습 열풍을 이끌었다.
코로나가 촉발시킨 주요한 사회 변화 중 다양해진 개인활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개개인의 거리는 멀어졌고 재택근무는 일상이 된 만큼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어났다.
독자들은 늘어난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는 일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집을 꾸미는 노하우를 담은 홈인테리어 관련서와 컬러링북이 속한 디자인/색채 관련서, ‘홈트’를 담은 운동/트레이닝 관련서다. ‘집콕’생활과 관련이 있는 책들이 큰 폭의 판매신장률을 보였다.
‘반려식물’ 유행과 함께 뜬 가정원예, 캠핑/걷기/자전거여행, 그리고 맛집여행도 코로나에 억눌린 마음을 해소하려는 독자들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야외활동을 담은 캠핑/걷기/자전거/맛집여행 도서가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독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과 만화 분야의 다양해진 장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소설은 코로나 기간 동안 순문학 중심에서 탈피하여 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서 골고루 사랑을 받았고, 일본코믹스의 부활에 힘입어 만화분야가 2021년 역대 최다 매출을 기록하며 독자들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 고객의 시간을 지배하는 싸움, 급부상한 콘텐츠 시장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애플TV 등의 OTT서비스와 유튜브, 틱톡, 심지어 웹툰, 블로그까지 수많은 콘텐츠 서비스가 코로나19 이후로 전성기를 맞았다.
큰 틀에서 도서시장 역시 콘텐츠시장 중 하나겠으나 ‘고객의 시간을 지배하는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도서시장과 타콘텐츠시장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다만 코로나 기간 동안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단계로 시너지를 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듯 하다.
코로나 이전까지 도서시장과 미디어/SNS의 관계는 미디어와 SNS에서 책을 추천한다던가 책이 미디어에 간접노출 되거나 에세이 등 일부 분야에서 SNS스타가 저자로 나서는 수준이었으나, 코로나 기간 동안 OTT를 비롯한 콘텐츠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여타 콘텐츠가 도서시장으로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고 있다.
도서 자체가 콘텐츠 팬덤에 대한 굿즈화 된 것이다. 원작소설, 원작만화가 드라마/영화화되면서 판매량이 상승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었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대본집, 포토에세이, 컬러링북까지 다양하게 파생했다.
2020년 예술 분야에서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이 2위, ‘사이코지만 괜찮아 1’가 21위에 오르며 대본집 열풍의 시작을 알렸고, ‘펭수, 디 오리지널’과 ‘펭수 펭아트 #컬러링북’은 유튜브 스타가 포토에세이와 컬러링북을 낸 사례다. 에세이분야에서는 ‘트바로티 김호중’, ‘양준일 Maybe’등 포토에세이가 가세했다.
올 상반기 대본집/포토에세이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져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59%가 신장하기도 했다. 예술 분야에서는 ‘그 해 우리는’(1위), ‘나의 아저씨 세트’(3위), ‘시맨틱 에러’(12위), ‘옷소매 붉은 끝동 대본집 세트’(23위) 등 대본집 4종이 3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콘텐츠 시장에서 도서시장으로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며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시리즈는 2020년 상반기 종합 1위를 차지한 ‘흔한남매’다. 베스트셀러 집계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이 시리즈는는 현재까지도 ‘흔한남매 오해요’, ‘흔한남매의 흔한 호기심’, ‘흔한남매 과학 탐험대’, ‘흔한남매 불꽃 튀는 우리말’, ‘흔한남매 별난 방탈출’, ‘흔한남매 흔한 MBTI’ 등을 모두 히트시키며 어린이책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콘텐츠와 도서시장의 주요 변화 중 다음으로 유튜버들의 대거 진입을 들 수 있다. 2021년 경제경영분야 1위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를 비롯해 수많은 경제경영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들이 유튜브에 자주 출연하는 저자들로 재편되기도 했다.
올해 자기계발 분야 1위는 유튜브에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는 켈리 최의 ‘웰씽킹’이 차지했고, 에세이 분야는 주언규(‘인생은 실전이다’, 5위), 장명숙(‘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7위) 등 유튜버들이 새롭게 활약하고 있다. 여행 1위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의 이원지 역시 인기 유튜버로 예전에 낸 책이 역주행하며 인기를 끈 사례다.
SNS나 미디어를 통해 추천된 책이 순위에 오르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2020년 종합 1위 ‘더 해빙’, 2021년 종합 1위 ‘달러구트 꿈 백화점’, 올 상반기 종합 1위 ‘불편한 편의점’을 필두로 상위권 순위에 오른 거의 모든 책이 SNS채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평가한다. 올해 상반기는 여러 콘텐츠 채널을 통한 소개 및 확산이 베스트셀러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됐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