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안 파일

      2022.06.13 18:30   수정 : 2022.06.13 18:30기사원문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997년 작 할리우드 영화다. 제목처럼 과거의 치명적 실수를 두려워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잘 추적한 호러였다.

영화 아닌 현실에서도 은밀한 사생활이 공개돼 각계 명사들이 곤경을 치르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른바 X파일의 노출은 치명타였다. 이를 겁내는 권력자들의 속성을 십분 활용한 인물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에드거 후버 전 국장이었다.
1924년부터 무려 48년간 재임한 그는 불법도청 등 뒷조사 자료로 8명의 현직 대통령을 '배후 조종'했다는 오명을 사후에 뒤집어썼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한국판 X파일의 존재를 언급해 논란을 불렀다. 최근 CBS 라디오에서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등에 대한 '존안(存案) 파일'의 실재를 확인하면서다. 심지어 "국회에서 '공개하면 의원님들 이혼당합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 카더라, 증권가 정보지에 불과한 내용"이라며 신빙성은 평가절하했다.

파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파일 공개 시 이혼 대상으로 실명 거론된 하태경 의원(국민의힘)은 "박 전 원장과 '복잡하게 살았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며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대응할 뜻을 밝혔다. 국정원 측도 "사실 여부를 떠나 원장 재직 시 알게 된 직무사항을 공표하는 건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직격했다.

사실 '없애지 않고 보존한다'는 뜻인 '존안' 자료가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이 이를 이슈화한 속내가 더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X파일도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기면서 말이다.

박 전 원장은 존안자료를 폐기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나, 여론은 싸늘하다.
하등 진정성이 안 보여서다. 압도적 의석의 구여권 시절 이를 위한 법안 개정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정치 9단'급인 그가 정계 복귀와 퇴임 후 안전판을 만들려고 노회한 '외곽 때리기'에 들어갔다는 의심을 자초한 인상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