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일못해도 생계 걱정 던다' 상병수당 도입…"사업주 협조 관건"

      2022.06.15 17:45   수정 : 2022.06.15 17:45기사원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다음 달 4일부터 1년 동안 서울시 종로구, 경기도 부천시, 충청남도 천안시, 전라남도 순천시, 경상북도 포항시, 경상남도 창원시 6개 지역에서 시행할 1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 계획을 보건복지부에 보고받고 이를 논의했다고 15일 밝혔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상병수당 제도 개요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상병수당 시범사업 모형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택배기사 A씨는 무릎관절 수술로 인해 6개월간 일을 쉬어야 했다. 수술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그나마 해결했지만 생계가 막막했다.

대출로 생활비를 메웠지만 이자 갚기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A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다.


학습지교사 B씨는 가슴에 멍울을 발견했지만, 수업 건수를 줄인 채 병원에 가 치료받는 일은 미루다 뒤늦게 유방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치료 기간은 불가피하게 길어지게 됐다.

이들을 비롯해 모든 근로자가 아프면 쉬면서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의 시범사업이 다음 달 4일 시작된다. 정부는 오는 2025년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목표로 3년간 3단계에 걸쳐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다음 달 4일부터 1년 동안 서울시 종로구, 경기도 부천시, 충남 천안시, 전남 순천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 6개 지역에서 시행할 1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 계획을 보건복지부로부터 보고받고 이를 논의했다고 15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중 생계로 인해 쉬지 못하고 일하다 집단 감염된 사례들이 제도 추진의 계기가 됐다.

다음달 시작되는 1단계 시범사업에서는 일단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취업자나 해당 지자체가 지정한 협력사업장 근로자라면 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도 대상이다.

하루에 최저임금의 60% 수준인 4만3960원을 최장 120일 지원받게 된다.



◇우리에게는 낯선 '상병수당'…해외 대부분 국가는 이미 시행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부상으로 아플 때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독일에서는 지난 1883년 상병수당이 사회보험 급여로 처음 도입됐고,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취업자의 35%가 최근 1년 내 일하기 어려울 정도의 질병·부상을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고, 아픈 근로자의 30%는 직장 분위기와 소득 상실 우려 등으로 인해 제때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답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아프면 쉴 권리'가 부각됨에 따라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복지부는 1단계 시범사업을 통해 질병의 보장범위를 확인할 방침이다. 6개 지역을 보장범위와 급여기준이 다른 3개의 모형에 적용하고 제도 효과를 비교·분석할 계획이다.

부천과 포항은 입원 여부와 관계없이 질병·부상으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7일, 최대보장 기간은 90일이다. 종로와 천안 역시 근로활동이 불가능한 기간에 상병수당을 지급하되 대기기간은 14일, 최대보장 기간은 120일로 적용한다.

순천과 창원은 근로자가 입원하는 경우만 의료 이용일 수만큼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3일이며 보장 기간은 최대 90일이다. 상병수당은 대기기간이 지난 뒤부터 지급되는데, 모든 유형에 대기기간을 설정한 이유는 혹시 모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상병수단 진단서 받아 건보공단 제출…3년 시범사업 거쳐 2025년 도입 목표


지난 1월 복지부 상병수당추진단이 밝힌 사업 시행계획에 따르면 근로자가 상병수당을 받으려면 의료기관에서 상병수당 진단서를 받아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나 관할 지사에 제출하면 된다. 공단은 수급요건을 확인한 뒤 급여 지급 일수를 확정·통보한다.

공단은 급여 지급 이후에도 수급자의 소득 상실과 근로 여부 등을 확인하고 필요 시 사업장, 자택 등을 방문해 부정수급 여부를 점검하고 부정수급이 확인된다면 급여 지급 중지, 환수, 향후 수급 제한 등의 조처를 한다.

수급기간이 종료된 수급자는 회복됐다면 근로에 복귀하거나, 합병증 발병 등 부득이한 경우 수급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인 지원 요건과 신청 방법 등은 복지부가 이달 중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2025년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목표로 3년간 3단계에 걸쳐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여건에 적합할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를 설계해 나갈 방침이다. 1단계에서는 '4만3960원'를 지급하지만 2단계부터는 정률 급여 지급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변성미 복지부 추진단 팀장은 뉴스1에 "1단계 참여 6개 지역의 주민 수는 약 340만 명"이라면서도 상병수당 수급자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6개 지역 시범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했다고 한다.

변 팀장은 "7월부터 시행하지만, 상병수당을 소개·안내하는 의료기관 의료진의 역할, 관망 심리, 대기기간 등을 고려하면 제도는 한두 달 정도 있어야 연착륙할 것으로 보인다. 명확히 수급자 수를 알기 어려워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유급 또는 무급 휴가를 받는 경우 상병수당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선 시범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유급 또는 무급 휴가 등은 상병수당이 본격 적용되기 시작하면 함께 통합 정비할 문제들"이라며 "당장 결정하기보다 시범사업을 통해 중복 또는 결손되는 부분을 평가하면서 제도를 안정화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업주 협조 등 사회적 공감대 필요…"평시 소득 기준으로 지급해야" 주장도

상병수당 제도가 안착하려면 몸이 아픈 근로자의 장기 결근을 용인하는 사업주 등 사회적 협조와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상병휴가를 허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 유인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대부분은 상병수당으론 최저임금이 아닌 근로능력상실 이전의 소득 60% 이상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60%인 하루 4만원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된다.


변 팀장은 근로 환경과 연관된 상병수당 운용 계획에 대해 "추가 과제들로 보고 있다. 대체 인력 문제나 유관 제도의 관계, 사회적 분위기 조성 등은 제도 설계 때부터 고민해왔고 지난해부터 유관부처끼리 논의 채널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협의하려 한다"고 부연했다.


손 반장은 "아프면 당연히 쉴 수 있어야 되는데, 이를 저해하는 제도적·문화적 요인들은 다양하다"며 "특히 사업자들은 우리 사회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각자의 일터에서 '아프면 쉬기'를 장려하고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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