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마무리할 권리 달라"vs"자살 합법화 비윤리적"

      2022.06.16 15:27   수정 : 2022.06.16 15:27기사원문
기사내용 요약
'조력 존엄사법' 발의…안락사 논쟁 재점화
시민단체 "말기환자 자기결정권 확대해야"
종교계 "자살 합법화로 인간 존엄성 침해"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노년유니온, 내 생애 마지막 기부클럽 회원들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건너편에서 안락사법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6.16.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적극적 안락사 합법화를 통해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시민사회단체)

"죽음을 권리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환자에게 죽음이 강요될 수 있습니다.

"(종교계)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이 지난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력 존엄사법) 발의를 계기로 재점화됐다. 2018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후 일었던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조력 존엄사법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 한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에게 약물 처방 등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결정법(소극적 안락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적극적 안락사'다. 환자 스스로 약물을 주입한다는 점에서 의사가 직접 진정제 투여, 연명치료 중단 등을 통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 구분된다.

말기 환자와 가족·시민사회단체 등 조력 존엄사법을 지지하는 찬성 측은 "말기 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종교계 등 반대 측은 "죽음을 권리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70대 노인들로 구성된 노년 유니온·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은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정문 앞에서 '안락사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 받는 가족을 돌보다 결국 간병 살인에 이르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이냐"면서 "적극적 안락사법 도입으로 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가족을 돌보는 부모나 자식, 남편은 끝모를 간병의 터널에서 무너져 가해자가 됐다"면서 "80대 노모는 정신 질환을 앓아온 40대 딸과 끈으로 몸을 묶은 채 한강에 투신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10년 간 간병한 아들은 어머니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간병 살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또 "국민의 76%가 안락사를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고, 스위스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 디그니타스에서 안락사한 한국인은 2명, 디그니타스에 안락사를 신청한 국민은 18명, 디그니타스 회원으로 가입한 국민은 100명"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죽음의 영역에서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조력 존엄사법이 악용될 우려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현종 노년 유니온·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안락사가 허용된 선진국에서도 악용을 막기 위해 심의 등 절차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국가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바티칸=AP/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6일(현지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우크라이나 북부 부차에서 보내온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2.05.18.


반면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인 박은호 신부는 "조력 존엄사법은 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으로, 합법화될 경우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강요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면서 "실제 죽음을 원하지 않는 말기 환자들이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박 신부는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아닌, 생명의 문제"라면서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이 높다고 해서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생명을 결코 침해해선 안 된다. 입법 과정에서 생명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계는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를 확충해 '품위 있는 죽음(웰다잉)'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전문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다.

박 신부는 "호스피스나 완화의료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력 존엄사법이 제정되면 고통스러우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그동안의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충 노력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로 말기 환자가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지낼 수 있도록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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