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천원식당' 후원 반토막…"짠해서"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 상인들
2022.06.19 07:20
수정 : 2022.06.19 07:20기사원문
(광주=뉴스1) 정다움 기자,이승현 수습기자 = "물가 올랐다고 가격마저 올리는 건 '천원식당' 취지에 맞지 않죠. 그럴 거면 애당초 장사 시작도 안 했을거예요."
17일 오전 11시30분쯤 광주 동구 대인시장 내 1000원 식당으로 알려진 '해뜨는식당'에서 만난 업주 김윤경씨(49·여)는 치솟는 물가로 영업난을 겪고 있다는 말로 안부 인사를 대신했다.
극심한 봄 가뭄 탓에 식자재로 사용할 작물들이 작황 부진을 겪는 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물류비 등이 상승하자 김씨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초만 해도 반찬으로 6만원 어치 고기를 구매하면 하루를 버텼는데, 이제는 두배인 12만원 어치를 구매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대표 메뉴 격인 계란국에 사용할 계란 역시 한판에 8000원까지 오르면서 김씨는 재료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애써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해뜨는 식당'은 지난 2010년 김씨의 어머니 김순자씨가 독거노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단돈 1000원에 음식을 제공하면서 본래 상호보다 '1000원 식당'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김씨는 어머니 김순자씨가 별세한 뒤 7년째 가게를 홀로 운영하며, 자비와 후원받은 식재료를 활용해 밥과 국, 3가지 반찬을 점심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하루 평균 100인분의 식사를 마련, 취업준비생과 직장인, 어르신에게 나눔을 베풀면서 김씨는 '천원의 행복을 판매하는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물가가 오르기 전 '해뜨는 식당'에는 한 달 평균 50~60건의 후원이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30여건으로 반토막났다고 한다.
김씨는 "고물가 시대에 후원자들 역시 부담이 되는 건 당연하다"며 "충분히 이해되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자비를 더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후원이 대폭 줄었다는 김씨의 사정이 전해지자 대인시장 상인들이 발 벗고 나서 해뜨는 식당을 돕고 있다고도 했다.
상인들은 김씨가 반찬에 사용할 콩나물, 시금치 등 나물을 구매할 때 한 웅큼 더 쥐어주는가 하면 판매가 대신 원가에 판매해 김씨를 후원하고 있다.
대인시장 내 식육점 사장 정모씨(64·여)는 "요즘 한끼에 1000원하는 식당이 어딨냐"며 "우리가 도와줘야 취약계층분들이 식당을 계속 이용할 수 있을 것 아니냐.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고기에 김치나 반찬 같은 주전부리를 가져다 준다"며 "물가가 하루빨리 안정돼 천원식당 경영난이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자주 찾는 식료품 가게 업주 김광순씨(61·여)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김씨에게 쌀을 원가에 판매하고 있다"며 "시래기나 콩나물 같은 야채는 따로 빼놓고 챙겨준다. 이익도 없이 짠해서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고 울먹였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홀로 일하는 김씨를 위해 일손을 보태기도 한다.
전국 각지에서 후원받은 물품과 식재료가 도착하면 가게 한편으로 옮겨 정리하거나, 이용객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설거지를 하며 김씨를 돕고 있다.
특히 익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한번꼴로 봉사에 참여해 도움의 손길도 가끔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김씨의 지인들은 '물가가 오르니 영업을 중단하는 건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김씨는 어머니의 유언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애초에 식사 한끼를 1000원에 제공하는 건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며 "힘들어도 얼굴을 모르는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여기까지 왔다. 포기할 수 없다"고 미소를 지었다.
식사 가격을 당분간 올리는 것은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가격을 올릴거면 애초에 장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상황이 어려운 어르신들과 청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전할 것이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울러 "언제까지 식당을 운영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당초 식당을 운영했던 취지와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며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전국 곳곳에서 후원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