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아파트

      2022.06.20 18:21   수정 : 2022.06.20 18:21기사원문
서울에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였다. 회현동에 3층짜리 공동주택(미쿠니아파트)이 들어선 데 이어 1937년(서울시 건축물대장 기준) 충정로에 충정아파트(도요타아파트)가 준공됐다. 혜화동과 적선동에도 아파트가 지어졌다.

주로 일본인 임대·거주용이었다.

4층짜리 충정아파트는 당시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8층짜리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이던 시절이었다. 호텔(트레머호텔, 코리아관광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복원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일명 '가짜 반공의 아버지 김병조 사기 사건'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9년 6·25전쟁에서 아들 6명을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의 대국민 사기극에 속은 정부는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했고, 건물의 관리권을 맡겼다. 그러나 "김병조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한 장의 투서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건물은 몰수됐고, 김병조의 철창행으로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또 8개국 차트에서 1위를 휩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의 배경으로 쓰였다.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 때 건물의 3분의 1이 뜯겨나가면서 52가구 중 19가구가 철거됐고 이 중 3가구가 건물 중앙계단 자리에 집을 증축하면서 기괴한 건축형태를 갖게 된 때문이다.

85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국내 최고령 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충정아파트 철거를 결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때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살려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 했지만 안전문제가 심각해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 미래유산 지정 시도도 여의치 않았다. 서울시는 철거 이후 아파트가 있던 위치에 기록물과 구조물을 설치, 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과 보존이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게 안타깝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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