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에 대한 오류

      2022.06.23 18:15   수정 : 2022.06.23 18:15기사원문
세계경제가 불안하다. 기름 값은 물론 식료품 가격도 크게 올랐다. 환율이 오르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

고유가와 식량위기의 고조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경기침체 가능성마저 불거지면서 총체적 복합위기를 일컫는 '퍼펙트 스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편 보건위기와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서 세계화의 종말을 언급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초반 중국의 봉쇄에 따른 와이어링하니스 공급 차질로 인해 발생한 자동차 생산중단 사태와 최근의 요소수 사태는 근본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해외 어디든 비용이 싼 곳에서 생산을 하기 위해 오프쇼어링이 확대되던 세계화 시대와 달리 지금은 반대로 국내로 제조업 생산시설을 다시 불러오는 리쇼어링(reshoring),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로 재배치하는 니어쇼어링(near shoring), 동맹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무역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적기생산(just in time)의 효율성보다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just in case)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중장기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계산과 지금 당장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핵심 산업의 생산을 자국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는 논리가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내에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믿을 만한 동맹 또는 역내국과 우호적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한다는 원칙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이처럼 제조업 공급망의 구조 변화가 과거 세계화의 진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세계화 종말론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무역의 구성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무역이 대체로 상품 중심이었다면 경제성장과 개발로 인해 전 세계 무역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또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난 디지털 무역은 아직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많다. 상품 무역이 전처럼 빠르게 증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형태와 분야의 무역이 여전히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최근 국제무역의 변화는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무역 형태의 변화 또는 새로운 형식의 세계화로 진화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화의 종말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자급자족과 같은 완전한 탈세계화가 아니라 경제의 블록화와 지역화 현상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세계화 진화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정책과 기업 전략의 우선순위와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 무역의 혜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급망 구축은 기업의 판단에 따라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돼야 가장 효율적이다.
다만 미·중 패권경쟁하에서 경제안보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과 민간의 경제활동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세계화의 진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다.
또한 디지털 무역과 같은 신통상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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