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 '먹먹해지는 이름' 아버지 위해 '부산행'
2022.06.28 07:10
수정 : 2022.06.28 09:41기사원문
지난 26일 막을 내린 코오롱한국오픈 우승자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64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 우승은 3개홀 연장 접전 끝에 약관을 갓 넘긴 김민규(21·CJ대한통운)가 차지했다. 김민규가 아버지 얘기를 꺼내면서 눈물을 흘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7살 때 아버지 김진우(57)씨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현재 스윙 코치인 이경훈(53)프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버지로부터 골프를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본의 아니게 자주 부딪혔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부자(父子)의 냉전은 오래 가는 법이 없었다. '중재자' 이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훈프로가 민규를 처음 만난 것은 충남 태안 솔라고CC에서 있었던 초등학생 골프 대회에서였다. 구석진 곳에 혼자 앉아 있던 민규에게 다가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나를 가르치는 프로님 도움을 받아 대회에 나가는 것"이라는 답이 계기가 됐다.
물론 이경훈프로도 민규를 눈여겨 보고 있었던 차였다. 자신이 내민 손을 민규가 잡자 이프로는 민규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경훈프로의 지도하에 김민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골프에 재능이 있는 주니어를 지원하는 최경주재단 골프 꿈나무에 발탁됐다. 그리고 2015년에 중학생 신분으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이경훈프로에게 있어 김민규는 친아들과 같은 존재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은 민규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민규도 그런 스승을 아버지 이상으로 잘 따랐다. 김민규는 유러피언투어서 뛰다 2020년부터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주로 아버지가 캐디백을 맸다. 경비를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나 아버지의 '월권(?)'으로 밀월관계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김민규가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눈물을 흘린 것은 그런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라는 석 자를 듣는 순간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워 울컥했다"면서 "아버지는 그 힘든 상황하에서도 내가 약해질까봐 한 번도 아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적이 없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민규는 '한국오픈 우승이 갖는 의미가 뭐냐'고 묻자 "내 골프의 새로운 출발점이다"라고 했다. 그는 생애 첫 우승도 값지지만 '인내'를 배운 게 이번 우승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부산행'에 올랐다. 오는 30일부터 나흘간 부산 기장군 아시아드CC(파72)에서 열리는 신설대회 아시아드CC 부산오픈(총상금 8억원)에 출전,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김민규는 이제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 신세가 됐다. 시즌 제네시스 포인트와 제네시스 상금 순위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2인자'로 전락한 김비오(32·호반건설)를 비롯해 박상현(39·동아제약), 신상훈(PXG), 이준석(34·우리금융그룹), 김한별(26·SK텔레콤) 등 강호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김민규가 준우승 이상의 성적을 내면 KPGA코리안투어 사상 최초로 시즌 상금 8억원을 돌파하게 된다.
김민규는 "이번 대회를 마치자마자 디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출국한다"면서 "예상치 못한 출전이어서 힘든 일정이 되겠지만 이번 대회까지 2경기 연속 샷감을 끌어 올린다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국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