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20년이 걸린 ‘승리’ 규정과 ‘일류보훈’
2022.06.30 16:13
수정 : 2022.06.30 16:30기사원문
29일 제2연평해전 20주년을 맞아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이날 오후 해군 유도탄고속함(PKG) '윤영하함'은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부터 1시간30여분을 기동해 풍도 근해로 이동했다.
장마철에 접어든 평택의 날씨는 오전 내내 먹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헌화가 진행된 풍도 해상엔 마침 볕이 들었다. 파도도 1.5m 높이로 잔잔해졌다.
이날 윤영하함 갑판에선 20년 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영령을 기리는 유가족과 참전 장병 등의 해상 헌화와 헌주가 진행했다.
당시 북한군의 포격으로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357호' 정장 고(故)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모친 황덕희씨와 동생 윤영민씨, 그리고 '참수리357호' 승조원이었던 이희완 중령(당시 중위)과 윤영하함 승조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세영 시인의 추모시 '그대들의 눈동자는 조국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되었고'가 낭독되었다. "그대들의 눈동자는 이제 조국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되었고, 그대들의 피는 조국의 국토에 흐르는 강물이 되었고, 그대들의 숨결은 조국의 바다에서 고동치는 심장이 되지 않았더냐..."
우리 군은 제2연평해전 발발 20년 만에 비로소 당시 전투를 "NLL을 사수한 승전"으로 공식 규정했다. 그간 2함대사령부에서 열려온 기념행사도 이날부턴 "승전(勝戰) 기념식"으로 불린다. 전사자 유족과 참전 장병이 함께하는 해상 헌화가 진행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군 당국은 제2연평해전 전적비(戰蹟碑) 명칭도 전승비(戰勝碑)로 바꿀 계획이다.
'제2연평해전'은 지난 2002년 6월 29일 오전 한일 월드컵 대회 3·4위 결정전이 열린 날,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군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우리 고속정 '참수리357호'를 기습 공격해 발발한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윤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조천형 상사, 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다. 북한군에서도 3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전 당시 부장(부정장)으로서 전사한 윤 소령을 대신해 '참수리357호'를 지휘하며 북한군과 싸우다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이 중령은 "전역한 (참전) 장병들의 정신적 고충도 좀 더 세심히 들여다봐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20주년 승전 기념식'에 참석,"지금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생사가 오가는 전투현장에서 목숨 바쳐 싸워 승리했던 제2연평해전의 영웅들 덕분"이라며 "그분들이 우리를 지켰듯, 우린 그분들과 가족들을 지킬 것"이라며 "특히 군인사법 등 관련 법규 개정을 통해 추서 진급된 계급에 맞게 각종 급여·예우를 지원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과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기념식에 함께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도 "보훈처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6용사들의 고귀한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이번 제2연평해전 기념식의 명칭은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이었고, 이종섭 국방부장관도 기념사에서 제2연평해전을 “승리”라고 평가했다"며 "제2연평해전을 ‘승리’로 규정하는데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부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승전으로 규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짚었다.
반 센터장은 "우리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영웅과 참전군인의 헌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감사함을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했던 성격규정이었고 ‘일류보훈’과도 일맥상통한다"며 "앞으로 제2연평해전의 참전용사들을 승전한 영웅으로 당당히 대우해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반 센터장은 "기습을 받은 혼란의 상황에서도 장병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전투를 벌여 북한경비정에 큰 피해를 입히고 퇴각시켰다는 점에서 승리한 해전으로 규정함이 타당하다"고 강조하고 "사실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은 사통장비를 장착한 고속정에 부합하지 않은 비효과적이고 복잡한 5단계 교전교칙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고속정은 지휘부에서 하달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조준사격'이라는 5단계로 대응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중 차단기동은 고속정이 사통장비의 강점을 무시하고 밀어내기식으로 작전하라는 지침으로 그 결과 참수리-357호정은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경비정에 근접해서 차단기동을 하던 중 기습적으로 피격을 받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제2연평해전 후 교전규칙은 5단계에서 3단계(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사격)로 바뀌고 단순화된 배경이다.
하지만 교전규칙이 어느덧 잊혀지고 ‘9·19군사합의’에선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한다며 5단계 절차(경고방송-2차 경고방송-경고사격-2차 경고사격-군사조치)로 회귀시켰다.
반 센터장은 "현재 5단계를 구성하는 행동조치는 제2차 연평해전 당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작전단계를 복잡하게 회귀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제2연평해전 20주년을 계기로 이러한 복잡한 작전절차가 현장에서 장병들이 국가수호를 위해 작전수행을 하는데 차질이 발생하는 점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