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은 시혜가 아닌 예우… 국격에 맞게 보훈부 승격 나설 것"

      2022.07.04 05:00   수정 : 2022.07.04 05:00기사원문
대담=정인홍 정치부장
"국가와 유공자 및 보훈가족은 '갑을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국가는 참전용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생명과 그 가족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주체가 돼야 한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3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보훈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일곱살 소년 시절 베트남전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 처장은 "나라를 위해 총 들고 전장에 나가 희생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해주느냐가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했다.

박 처장은 18, 19대 국회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첫 정치인 출신의 보훈처장'이다.
외무고시와 사법시험을 둘 다 패스하고 특수부 검사로 일한 '엘리트 중 엘리트'다. 지난 3월 대선에서는 윤석열 캠프의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당선인 특별보좌역을 지냈다.

박 처장은 국회가 정상화되면 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그는 지금의 보훈처가 1960년대 일본의 '원호처' 시스템을 이어받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원호'에는 도와주고 구휼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도와주는 정부는 갑, 도움을 받는 유공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박 처장은 "보훈은 예우이지 시혜가 아니다"라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국격에 맞는 정부조직 개편이 필수"라고 했다. 다음은 박 처장과의 일문일답.

―첫 정치인 출신 보훈처장이다. 어떤 마음가짐인지.

▲14년간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보훈 관련 다수 법안을 발의하는 등 꾸준히 보훈 정책과 관련한 일을 해왔다. 보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강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 보훈처의 역할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의 영역에서 '나라의 정체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국가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방향성인데, 다르게 이야기 하면 '이데올로기'다. 지난 몇 년동안 국가의 정체성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오히려 비분강개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천안함 좌초설'이 나오고 병사들을 '패잔병'이라고 한다거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도 북한에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월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방향성을 바꿔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아쉬웠던 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사과했다. 베트남은 미국에 승전했고, '과거는 묻지 않는다, 미래로 간다'는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폈기 때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사과를 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는데, 이게 멋있는 행동 같지만 당시 8년 동안 청춘을 바쳐 참전한 우리의 젊은 20대 장병 32만5000여명이 전부 학살자가 되는 거다. 대통령이 함부로 사과하는 건 안된다. 전쟁이 개인 간의 사랑싸움이 아니지 않나.

―호국이 왜 중요한 가치인가.

▲보훈은 국가의 책무이다. 보훈에는 '독립의 가치' '민주화의 가치'가 포함돼 있지만, '호국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6·25전쟁이나 베트남전 참전에 있어서 나라를 위해 총 들고 전장에 나가 희생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우해주느냐가 최우선 가치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호국에 대해 이야기하면, 또 전쟁 이야기를 한다며 '꼰대' 이미지로 연결되거나 '전쟁광 집단'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또 '군사독재 세력의 후예'라는 프레임까지 짜놓았다. 반대로 '민주화' '촛불'을 이야기하면 상당히 세련된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제 균형을 갖춰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달라질까.

▲윤석열 대통령은 보훈의 중요성을 수차례 말했다. "확고한 보훈체계는 강한 국방력의 근간이다. 보훈과 국방은 동전의 양면이다. 며칠 전 만났을 때에도 약 1시간가량 이런 소신을 말씀하셨다. 나라를 위해 싸우러 간 국민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보훈이다. 내 가족이 알거지가 된다면 누가 전쟁터에 나가겠나.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보훈부 승격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생각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 국정운영의 방향을 알리는 중요한 메시지다. 지금의 보훈처는 아쉽게도 1960년대 일본의 원호처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원호', 즉 도와주고 구휼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게 되면 도와주는 주체는 '갑'이 되고 도움 받는 사람은 '을'이 돼버린다. 보훈은 예우이지 시혜가 아니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국격에 맞는 정부조직 개편이 필수다.

―외국 사례는.

▲선진국들이 보훈부를 가장 높은 부서로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가 국방부 다음 두 번째 규모이고, 대통령이 신년 예산을 발표할 때 보훈예산을 가장 먼저 발표한다. 보훈의 위상이 높은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보훈처장이 '장관급'이지만 정부조직법상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부서권과 독자적인 부령 발령권이 없는 등 국무위원에 비해 권한이 제약되어 있다. 이는 원활한 보훈정책 추진에 한계로 작용한다.

―'박민식표' 역점 사업은 무엇인지.

▲보훈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포스트코로나, MZ세대 부상 등 시대가 많이 변한 만큼 또 다른 변화와 발전이 있어야 한다. 보훈이라고 하면 대부분 '엄숙함, 추모'같이 무거운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렇게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어렵다. 문화로서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보훈이 될 수 있도록 '박민식표 보훈정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있나.

▲젊은 세대에게 보훈을 안보교육 하듯 강요하면 안되고 일상에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충원이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주 찾아오는 공간이 돼야 한다. 열린음악회를 현충원에서, 광주 5·18 민주묘역에서 열면 어떨까. 보훈에 문화·예술·스포츠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경기 도중 소방관 순직에 대한 묵념을 하는 등의 문화가 자연스레 녹아 있다. 또 참천용사 전용 주차장 등 그들을 위한 특별 대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보훈 콘셉트가 담긴 캐릭터와 이모티콘을 만들어 친근함을 높이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은데.

▲검사 시절 같이 근무한 적은 없지만, 둘 다 특수부 검사 출신이니 서로 이름만 알던 시기였다. 제가 서울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로 있을 때 사표를 냈는데 대화해본 적도 없던 2기수 위 선배인 당시 윤석열 평검사께서 불쑥 전화해 중국집으로 부르더라. 그러면서 '얼른 사표 찢고 복귀해 일하라'고 질타하면서 설득했다. 어찌 보면 오지랖이 넓은 거였지만 후배들을 챙기는 마음에 내 마음 한구석도 상당히 짠해졌다. 이후 늘 제가 힘들 때마다 인간적으로 다독거려 주며 언덕이 돼주었다.

―윤 대통령이 보훈처장직을 일종의 '보상'으로 줬다는 말이 나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자리에 적임자인가 아닌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윤 대통령이 보훈처장 인사를 결정할 때 망설임 없이 '아 그 자리에는 박민식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저희 가족의 히스토리를 상세히 알고 있다. 저에게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이라는 정부 국정과제를 성공시키려면.

▲국가가 먼저 책임지는 등록·심사제도와 보훈보상체계를 구현할 것이다.
또한 보훈 의료의 접근성과 보장성 제고, 사망 시 예우 강화를 통해 빈틈없이 책임지는 보훈 복지를 실현할 계획이다. 또한 제대군인의 사회복귀 지원을 강화, 청년 의무복무자에 대해 사회적 존중과 예우를 실현할 것이다.
이와 함께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 추진 등 유엔 참전국과의 '보훈 외교'를 강화할 것이다.

ming@fnnews.com 전민경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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