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택이 울던 날
2022.07.04 14:49
수정 : 2022.07.04 14:49기사원문
그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은퇴식 내내 담담함을 유지했으나 아내 얘기를 말하던 대목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의 마지막 현역을 보기 위해 3일 잠실야구장에는 코로나 19 사태이후 처음으로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박용택(43·전 LG)은 이날 은퇴식을 가졌다. 19년 동안 그의 등 뒤에서 함께 뛴 33번은 이제 LG 선수에겐 누구도 달 수 없는 번호로 남았다. 김용수(41번·투수)와 이병규(9번·외야수)에 이어 구단 역사상 3번째 ‘영구결번’이다.
박용택의 눈물은 83년 전 루 게릭(전 뉴욕 양키스)을 떠올리게 한다. 게릭은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진 철마(Iron Horse)였다. 하지만 근위축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기록 중단은 물론 36살의 나이에 서둘러 은퇴해야만 했다.
이 병은 나중에 ‘루 게릭’ 병이라고 명명되었다. 은퇴한 지 2년 만에 그는 루 게릭 병으로 사망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4일 양키스타디움서 열린 그의 은퇴식에는 만원 관중이 몰려들었다.
루 게릭은 “나는 가장 행운아였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후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유달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돈 냄새를 잘 맡는 할리우드가 사망 이듬해 서둘러 영화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 게리 쿠퍼를 주연으로 썼다.
양키스 구단은 게릭의 은퇴식 날 멋진 선물을 주려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영구결번이었다. 양키스 선수는 이후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영원히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뉴욕(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944년 투수 칼 허벨(통산 253승 154패, 평균자책점 2.98)의 등번호 11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통산 두 번째이자 내셔널리그 최초다. 2022년 7월 4일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206개의 영구결번이 있다.
그 가운데 선수 및 감독 출신 번호는 194개다. 나머지 12개 가운데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팬들, 세인트루이스의 잭 벅과 다저스의 전설 빈 스컬리 등 중계방송 아나운서 네 명도 포함되어 있다.
등 번호 10번은 치퍼 존스(전 애틀랜타), 마이클 영(전 텍사스) 등 선수와 토니 라루사(전 세인트루이스), 스파키 앤더슨(전 신시내티) 등 감독, 선수와 감독 모두로 명성을 얻은 딕 하우저(전 뉴욕 양키스)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인들이 꺼려하는 13번을 달고 뛰면서 영구결번 자격을 얻은 데이브 콘셉시온(전 신시내티)도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 유격수였던 콘셉시온은 통산 2326개의 안타와 101개 홈런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등번호는 42번이다.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의 번호로 30개 구단 모두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단 1997년 이전 이미 그 번호로 활약했던 브루스 서터(전 세인트루이스)와 마리아노 리베라(전 뉴역 양키스)는 그대로 42번을 지켰다. 이들의 등번호도 함께 결번됐다.
일본 프로야구는 역사에 비해 영구결번 수가 적다. 오 사다하루(1번), 나가시마 시게오(3번·이상 전 요미우리) 등 18명뿐이다. 최초의 결번자 사와무라 에이지와 구로사와 도시오(이상 전 요미우리) 등 두 명은 공교롭게도 20,30대에 죽었다. KBO리그는 최동원, 선동열 등 16명이다.
박용택은 KBO리그서 가장 많은 안타(2504개)와 10년 연속 3할 타율 기록을 남겼다. 꾸준함이 있어야 가능한 기록들이다. ‘철마’ 루 게릭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방송인’이 아닌 ‘현역’ 박용택이 자꾸 떠오른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