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그림자

      2022.07.12 18:28   수정 : 2022.07.12 21:17기사원문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 총격피습 사건이 전해진 직후 일본 거주 재일 한국인 대다수는 '만에 하나'를 떠올렸다. 사건 발생 1시간여가 지난 낮 12시40분께 범인의 이름이 확인됐다.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라는 일본이름과 그가 전직 자위대원이었다는 속보가 타전된 후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양국 관계가 이제 좀 개선되는 방향으로 돌아설까 하고 기대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법하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된 지 99년, '희생양 찾기'에 대한 과거의 깊은 트라우마 탓도 있을 것이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0일부터는 살인 용의자인 야마가미의 범행동기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특정 종교와 연관 있다는 일본 우파매체의 보도와 뒤이은 한국 내 보도가 확산되면서 침묵 속 긴장이 너울치고 있다. "한국인 혐오범죄를 주의해 달라"는 재외국민용 문자메시지로 한일 양국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주일본 후쿠오카 한국 총영사관의 대응은 사실 오랜 세월 체화된 동물적 감각에 따른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한일 관계는 특수하다. 또 참으로 민감하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아베 신조라는 일본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지녔던 전직 총리이자, 사실상 자민당 1대 주주라는 현직 거물 정치인이 총격으로 사망한 초대형 사건이다. 생전 그가 대한국 강경대응의 구심점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사실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베 전 총리가 꿈꿨던 '아름다운 나라 일본'은 재무장을 핵심으로 한 강한 나라다. 이는 주변국엔 긴장과 위협의 불씨로 간주됐다. 그런 아베 전 총리를 향해 일본의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총리인 것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그의 압도적 존재감만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공과는 있을지언정 의욕적인 리더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누구도 이런 식의 퇴장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상왕 아베'와의 결별을 최대 과제로 삼았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더욱 그랬을 것 같다. 사실 참의원 선거(7월 10일)가 끝나면 아베 정치가 힘을 잃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었다.

기시다 총리로선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 아베 전 총리의 그림자만 안고 가게 됐다. 당장 자위대를 사실상의 군대로 명기하는 등의 개헌안 추진도 힘을 받을 모양새다. 조문외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제교류 일정은 올스톱이다.

이런 식의 퇴장은 추앙과 미화를 낳고, 또 다른 신화를 만든다. 그를 향한 비판의 화살도 자연히 문드러질 수밖에 없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가 치러진 12일, 빈소가 차려진 사찰 조죠지 앞에는 빗속에도 조문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전직 총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그림자가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이제 막 관계개선 경로에 한발 내딛기 시작한 한일 관계에도 그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기를 바란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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