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잃어버렸다고 늘 자책... 죽기 전에 꼭 다시 찾고파"

      2022.07.18 18:06   수정 : 2022.07.18 18:06기사원문
61년 전의 여름(1962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열살이었던 형 오종욱씨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에 있던 본가에서 외가(서울 마포구 아현동)로 심부름을 나섰다. 혼자서 길을 나섰던 그 순간 집에서 자는 줄 알았던 동생(오종하·당시 여섯살·사진)이 뛰쳐나와 보채기 시작했다.

형과 함께 외가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너저분한 몰골이 마음에 걸렸던 어머니는 이내 시장으로 가서 반바지와 줄무늬 면티를 사서 입혔다.
그렇게 늦은 오후 7시께 어린 형과 더 어린 동생은 집을 나섰다.

용산과 아현동까지 거리는 해봐야 7㎞ 남짓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다. 그렇지만 그해 여름 형제가 외가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현동 가구거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야 했지만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더 가 당시 종점이었던 신촌 로터리에 도착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그래도 형제는 어른들에게 물어물어 다시 버스를 탔고 외가에 있는 아현동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외가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동생은 또래 친구(주인집 아들)와 함께 아현동 골목과 언덕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또래 친구는 돌아왔는데 동생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함께 나간 주인집 애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생은 한눈을 팔았는지 친구와 헤어졌고 길을 잃었는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 길로 형 오종욱씨와 고등학생이던 작은 외삼촌은 동생을 찾아 나섰다. 아현동 골목이고 언덕이고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뒤졌지만 동생을 찾지 못했다. 동생의 실종 이후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부모님은 가사를 팽개치고 동생을 찾으러 다녔다. 가세는 기울고 집안사정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처럼 61년 전의 일이지만 오종욱씨는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그날 일을 잊지 못했다. 동생 모습에 대한 기억을 묻자 오종욱씨는 "머리 가마에 3~4발 꿰맨 자국이 있다. 부모님이 국수 가게를 했는데 수작업 기구 핸들에 동생 머리가 찍혀서 초승달 모양의 상처가 났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핏줄이니 유전적으로 뒷머리에 제비추리가 있을 것이다. 또 눈썹이 아버지를 닮았다면 '반쪽 눈썹(절반은 진하고 나머지 절반은 옅은)'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오씨는 "외형적으로 특별한 특징은 없지만 (동생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똑똑했다"며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 일터까지 도시락을 배달하고도 집을 잘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오씨는 동생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언론사에 기사도 내보고 라디오 방송에 사연도 보내고 방송 출연까지 하면서 동생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오씨는 "나이 먹고 이제 손자·손녀도 있는데 이별 당시 동생 또래(6세) 아기들을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며 "부모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이제라도 동생을 찾아 혈육의 정이라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제가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며 "꼭 찾고 싶고 죽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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