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과 십만양병설
2022.07.26 18:20
수정 : 2022.07.26 18:20기사원문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물리적 전쟁만이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과의 전쟁, 지정학적 요인을 담은 미·중 간의 패권경쟁 그리고 반도체를 위시한 산업기술과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려는 세계 각국의 각축전이 한창이다. 특히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분야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더욱 치열해지면서 디커플링과 연계해 핵심 산업의 생산과 기술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강건한 공급망을 자국 내에 구축하려는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을 보면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떠오른다. 그만큼 반도체가 미래 산업과 기술은 물론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고, 국가의 명운에 미칠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쟁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한국 경제 전반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미·중 패권경쟁이 기술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진영화와 기술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핵심 분야의 독보적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진영 싸움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법안(CHIPS Act)에 대한 의회의 표결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반도체산업의 R&D와 제조역량에 대한 지원규모가 5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혁신경쟁법과 미국경쟁법 등을 통해 첨단기술 분야에서 생산, 투자, R&D, 규제완화 등 전방위적으로 미국의 경쟁력 강화와 혁신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더 이상 민간에만 맡겨서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와의 기술 패권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절박함의 방증이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등 전략적 핵심 분야에 대해서는 보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기존에 발표한 계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이러한 계획을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 특히 첨단기술에 대한 물적, 인적, 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종합적 지원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국내 기업의 투자뿐 아니라 해외 기업과 외국인 직접투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반도체 기술의 R&D를 위한 국제 컨소시엄을 국내에 개설하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실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큰 그림과 야심찬 목표에 더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실행계획이 포함된 종합대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처럼 우리 역사의 아쉬운 대목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선견지명과 백년지대계의 초석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