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신료 폐지

세계 각국의 공영방송들이 경영위기를 맞을 참이다. 수신료 폐지라는 역풍에 직면하면서다. 프랑스 하원이 지난 23일 공영방송 텔레비지옹의 수신료를 올해 중 폐지하는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이번 주 상원 문턱까지 넘으면 프랑스에서 시청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영국은 BBC의 수신료를 2024년까지 동결하고 2028년까지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NHK도 올가을에 수신료 인하안을 발표한다. 스페인은 진작에 수신료 대신 통신사업자들로부터 거둔 세금 중 일부를 공영방송 재원으로 운용 중이다. TV 수신료를 줄이거나 없애려는 속사정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다만 "공영방송을 잘 보지도 않는데 수신료를 내긴 아깝다"는 시청자 여론은 공통분모다.

이런 흐름은 매체산업의 지각 변동을 반영한다. 방송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이 TV에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시청자들이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쏠리면서 공영방송들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가 모토인 'NHK당'까지 출범했겠나.

방송시장의 여건은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KBS·MBC 등 국내 공영방송들은 '노영방송'이란 비아냥을 들으면서 해외 방송들에 비해 보도의 공정성도 의심받고 있다. 자유로운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긴커녕 고리타분한 도덕이나 특정 정파에 치우친 이념을 가르치려 드는, 이른바 '훈민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들으면서….

국내 공영방송들은 외국과 달리 민영방송처럼 상업광고까지 허용된다.

그럼에도 KBS 수신료 인상안(월 2500원→3500원)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만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공영방송들이 존폐의 기로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적 진영논리를 떠나 공영성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일 듯싶다.

[e-mail]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