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희롱 피해자 비공개… 방어권 침해 아냐"

      2022.08.07 17:36   수정 : 2022.08.07 17:42기사원문
성희롱 발언 등으로 해임 처분된 후 그 징계의 타당성을 두고 법적으로 다툴 때, 의심 정황이 이미 구체적으로 특정됐다면 피해자 실명 등이 없어도 가해자 방어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의 해임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검찰주사보였던 A씨는 2018년 7월부터 10월까지 검찰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던 중 여성 사무원과 수사관 등을 상대로 성희롱, 우월적 지위·권한을 남용한 부당행위 등을 함으로써 국가공무원법 제63조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2019년 5월 해임 처분을 받았다.



조사 결과, A씨는 2018년 2월 회식 자리에서 한 여성 수사관을 가리켜 "나를 좋아해서 저렇게 꾸미고 온다", 2018년 8월 여러 직원이 있던 사무실에서 "선배 옷 입은 것 봐라. 나한테 잘 보이려고 꾸미고 왔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술자리를 마친 뒤 피해자 등을 집에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허벅지 자랑을 하며 "한번 만져봐라"며 10번 이상 자신의 허벅지를 만져보도록 강요하는 등 2018년 9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성희롱 발언을 했다.


그러나 A씨는 "과장·왜곡된 사실에 기초한 처분"이라며 해임 징계에 불복,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언행은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임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가 각 징계혐의 사실을 다투고 있음에도 처분 절차부터 행정 소송까지 피해자 등이 특정되지 않아 진술에 맞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며, A씨 방어권이 침해됐다는 취지에서다. 2심은 "이 사건 처분에는 절차적 하자가 있고, 제출된 증거 만으로 이 사건 징계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성비위 행위의 경우, 각 행위가 이뤄진 상황에 따라 그 행위 의미나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 등이 달라질 수 있어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등 구체적 상황이 특정돼야 한다는 것이 그간 판례였다.

각 징계 혐의 사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돼 있고, 징계 대상자가 징계사유의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징계대상자에게 피해자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아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줬다고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비위 관련 징계 혐의와 관련해,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보장과 피해자의 인적사항 특정 정도에 대해 명시적으로 판시한 첫 사례"라며 "향후 하급심에서 동종 유사 사건에 관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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