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규제 '안개' 옅어진다… 하반기 집값 하락 '멈춤'

      2022.08.07 18:14   수정 : 2022.08.07 18:14기사원문
지난 몇년간 급등세만 반복하던 주택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 들어 수도권 주요 지역과 서울 외곽지역에서 급매물이 나오며 가격 하락을 시작하더니 지난 7월부터 서울 강남권 등 인기지역도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윤석열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반시장적인 규제를 푸는 내용의 대책을 연달아 내놨지만 부동산 시장의 내리막길은 더 가팔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때 20차례가 넘는 고강도 대책에도 꿋꿋하게 오름세를 탔던 주택시장이 왜 이처럼 완전히 달라졌을까. 국내외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넘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맞는 고금리 파고는 자산시장을 급속하게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살인적 인플레이션에다 경기침체까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도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주택시장 입장에서만 보면 꼭 악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주택경기를 선도하는 서울의 경우 입주물량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급속히 줄어든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또 임대차2법 부작용에 따른 전월세 가격 급등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8월이 시작됐지만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어 계약갱신청구권 후유증이 전혀 없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는 철모르고 하는 얘기다. 새 정부가 주택시장에서 반시장적 규제를 걷어내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고 하나둘씩 규제를 풀고 있다는 점은 무시 못할 요인이다. 또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계속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벌써 미국 경제가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는 징후가 각종 지표에서 포착되고 있다.

하반기 주택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변수 세 가지를 짚어본다.


지난 2일(현지시간) CNBC와 AP통신은 뉴욕 연방준비은행 보고서를 인용, 미국의 올 2·4분기 가계부채 총액이 16조1500억달러(2경1190조원)를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4·4분기보다 2조달러 이상 증가한 것이다. 특히 신용카드 잔액은 460억달러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뉴욕 연준은 "모든 종류의 채무가 크게 늘었으며 저소득층의 신용카드와 자동차론 연체율이 크게 오른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저소득층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금리상승세가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마켓워치는 지난달 31일 미국부동산전문사이트 리얼티닷컴 발표를 인용해 미국 200개 대도시의 주택 4채 중 1채꼴로 매매가격이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주택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하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고 마켓워치는 분석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올 초 0~0.25%에서 지난 7월 기준 2.25~2.50%까지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평균금리도 1년 전 2.5%에서 5.3%로 두배 이상 올랐다고 설명했다. 앞서 7월 28일에는 미국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9%를 기록, 지난 1·4분기(-1.6%)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미국 상무부의 발표가 있었다.

이처럼 미국 경제지표들이 줄줄이 악화된 수치를 기록하자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경제가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피에르 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7월 26일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경제학자 39명 중 21명이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단계에 있다"고 답했으며 2명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국내 경제학자 54%가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미국 기준금리와 국내 기준금리 오름세도 점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미국 금리와 동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경우 한국경제에 경기둔화가 그대로 파급될 수 있어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금리역전이 일어나도 외국자금의 대규모 유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KDI에 따르면 과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 등 3차례 시기 중 외국인 자금은 오히려 순유입을 기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어쨌든 국내외 금리 추이는 하반기 주택시장 기울기의 방향을 가를 가장 중요한 변수다.


진짜 괜한 걱정이었을까.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3년3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 2년이 지나는 8월부터 전셋값 폭등을 우려했지만 오히려 전셋값이 떨어진 것이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7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7788만원으로 전월 6억7792만원보다 소폭 떨어졌다. 2019년 4월 4억6210만원 이후 무려 39개월 만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8월부터 4년 동안 오르지 못한 전셋값을 한꺼번에 반영한 신규 전세매물이 쏟아지게 되는 '8월 대란설'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세매물이 늘어나고 있고, 신규 전세매물을 찾는 수요까지 감소하는 등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새 정부가 내놓은 상생임대인제도도 효과를 미치면서 8월 전세대란설은 없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집계된 신규 계약건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새로 나온 물건이 얼마나 포함됐을까. 통상적으로 임대차계약 신고는 계약이 이뤄진 후 한달 이내에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세입자가 입주 후 동주민센터나 대법원(등기소)에 확정일자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7월 통계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난 매물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 매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8월 이후부터 연말까지가 전세시장의 진짜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진짜 전세대란 여부는 10월 안팎이 돼야 실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생임대인제도가 새롭게 도입되기 때문에 이 같은 변수를 상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전월세 물건의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하면 집주인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2년 거주)을 완화해주는 것으로, 이 제도 시행으로 집주인이 한꺼번에 4년치 전세금 인상액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맞지 않는 말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상생임대인제도는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누리리면 1주택일 경우만 가능하다. 여러 주택일 경우 마지막 한 채가 상생임대주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 보유수별로 잘 살펴보자. 1가구1주택자는 아마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택에 거주할 여건이 되지 않아 자신의 집을 임대를 주고 있는 경우만 해당된다. 그러나 1주택자는 대부분 양도세 면제 혜택을 받기 때문에 큰 매력이 없게 된다.

2주택자의 경우라면 상생임대인주택 혜택을 받으려면 세를 주고 있는 주택에 앞서 기존 주택부터 팔고 마지막에 상생임대주택을 팔아야만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 3주택 이상 다주택도 마찬가지다. 상생임대인제도가 전세시장 안정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칠 것으로 분석하는 이유다.

올 하반기 입주물량 감소도 잘 봐야 한다. 부동산R114 등에 따르면 올 하반기 서울 입주물량은 8418가구로 전년동기 대비 41% 감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반기 입주물량이 1만가구를 밑도는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다만 수도권 지역에서 입주가 늘어나기 때문에 얼마나 충격을 완화할지가 변수다. 경기 지역은 7만3551가구, 인천은 1만8834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5%, 39% 증가한다.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부동산 시장을 멍들게 하는 반시장 규제 완화에 나섰다. 5월 10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1년간 한시 유예하는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5월 30일 민생대책, 6월 16일에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6월 21일에는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 및 3분기 추진 부동산 정상화 과제(6·21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가장 급하다고 하는 거래, 보유 단계 '대못'부터 손댄 셈이다.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재 100%에서 60%로 대폭 낮추고 한시적으로 1주택자에 한해 특별공제 3억원을 도입하는 등 보유세를 대폭 낮춰주기로 했다. 또 생애최초주택 구입자 대상 취득세 감면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완화하고 임대차시장 안정을 위해 상생임대인제도 요건 완화, 민간건설임대 공급 확대 등의 방안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정상화엔 갈 길이 아직 멀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아놓은 대못이 너무도 많고 깊기 때문이다. 앞서 내놓은 대책들도 법 개정을 통해야만 하는 것들도 대부분이다. 거대 야당이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문턱을 넘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꼭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총선이 2년도 안 남은 상황이라 야당도 대놓고 반대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서울·수도권 지역 야당 국회의원들은 이제 부동산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말까지 대놓고 나오고 있다. 당장 종부세를 놓고도 이 같은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종부세 부과 기준을 12억원(1주택자 기준)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서울 중·성동을)은 종부세 기준선을 15억원으로 올리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여야 모두 새로운 지도체제가 출범하면 서서히 총선 정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야당인 민주당도 서울과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지역구민의 목소리를 담아 규제완화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특히 여당이 과감한 규제완화를 추진한다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반기 주택시장에서 금리 추이와 전세시장, 규제완화 추이를 정밀하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kw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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