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전봇대'는 안뽑혔다..대통령들 직접 나선 규제개혁 모두 실패
2022.08.10 05:00
수정 : 2022.08.10 08:16기사원문
#1.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내 산업도로 전봇대가 선박 블록을 나르는 대형 트럭의 운행에 지장을 준다고 지적했다. 몇달이 지나도 그 전봇대는 그대로 있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만들겠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기업인들은 웃는다"며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을 지적했다.
#2.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월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거창한 정책보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먼 길 좋은 구경 간다고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힘들어서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며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2.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월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거창한 정책보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먼 길 좋은 구경 간다고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힘들어서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며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파이낸셜뉴스] '전봇대론', '손톱밑 가시론', '손수레론' 등 역대 대통령들은 규제개혁에 직접 칼을 뽑았다. 규제개혁이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규제는 더 늘었다.
집권 초기 규제개혁을 화두로 삼아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은 후반기로 갈수록 규제가 늘면서 용두사미로 전락하곤 했다.
큰 정부를 지향했던 문재인 정부 이후 규제·감독 관련 공무원이 늘어난 것도 향후 규제가 늘어날 가능성을 키운다. 공무원수가 늘면 일거리를 찾아 자꾸 규제를 만들수 밖에 없고, 그만큼 기업하기 힘들어지는 구조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공약이었던 규제개혁전담기구를 설치하면서 3개월 동안 140개 과제를 해결하며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의 파워는 약해지고 공무원들의 규제확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마다 전담기구 설치했지만.. 규제 더 늘어 '용두사미'
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역대 정부 모든 대통령들은 규제개혁을 화두로 삼아 경제활력 제고에 나선바 있다. 우리나라 규제개혁 체계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시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이 근거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색깔에 맞는 규제개혁 기구를 갖췄다. 노무현 정부 규제개혁추진단, 이명박 정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박근혜 정부 규제개혁장관회의, 윤석열 정부 규제혁신전략회의가 갖춰져 규제개혁에 나섰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처럼 규제개혁으로 경제와 기업 살리기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규제혁파의 이면에 신설된 규제들은 기업성장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김대중 대통령) 5년여 동안 신설된 규제는 4518개(연평균 985.8개)였다. 참여정부 5759개(연평균 1151.8개), 이명박 정부 5827개(연평균 1165.4개), 박근혜 정부 4859개(1214.8개), 문재인 정부 5798개(1159.6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전체 등록 규제 1998년 1만185개 수준에서 박근혜 정부시절 1만4000개로 늘었다. 정부부처의 규제 현황을 보여주는 '규제정보포털'은 총 규제 개수를 집계한 통계 현황판을 2015년 10월부터 폐지했다.
이후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는 위축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심사 규제는 5795건 수준이지만 규개위가 철회, 개선 등 의견 낸 것은 128건(2.2%) 수준에 그쳤다. 이는 규개위 규제 제동률이 이명박 정부(10.9%), 박근혜 정부(5.8%) 때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다.
김대중, 규개위 설립...규제개혁 물꼬 터
규제개혁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 시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를 설립하고, 규제 50% 폐지를 목표로 부처별 '규제 감축'을 의무적으로 할당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환란을 겪은 한국을 지원하며 "불투명한 규제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것이 규개위를 설립하게된 계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기도 북부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의 준공을 이끌었다.
그는 2003년 3월 취임 첫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투자규제완화 카드를 꺼냈다. 경기 북부는 수도권 규제,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 등 각종 제약으로 대기업 공장 신·증축이 제한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규제 신규제 신속완화 지시로 수도권에 새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한시적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물꼬가 터졌다.
'손톱밑 가시론' 박근혜, 끝장토론 통해 규제혁파
MB정부는 집권 초기 대불공단 '전봇대론'에서 후반기의 '손수레론'으로 진화했다. 이 전 대통령은 탁상행정을 질타하며 대불공단 전봇대를 뽑아낸 후 서민의 자생력을 높이는 규제완화에 나섰다. 손수레론은 대기업이 미소금융으로 손수레상인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기업이 비즈니스 노하우까지 전수하면 손수레상인은 이자와 돈도 잘 갚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끝장토론에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 '천송이 코트'를 예로 들며 규제개혁을 설파했다. 중국인들이 한류열풍으로 인기 절정인 천송이 코트를 구매하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지만 우리나라만 요구하는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Active X) 등이 결제를 막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규제개혁위원회 등을 통해 규제혁파를외쳤다. 규제자유특구, 규제샌드박스 등으로 선도형 경제로 가는 장애물을 제거하기도 했다. 규제샌드박스는 2021년 2월 기준 총 410건의 과제를 승인해 투자 1조4000억원 유치와 일자리 2800여명을 창출하기도 했다. 2019년 도입된 '규제자유특구'는 3여년만에 투자 2조7000억원 유치, 일자리 3000여개를 창출하는 등 지역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중대재해법·52시간제 완화 시사
윤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붕괴, 고물가, 고금리 속 경제살리기 방안으로 규제개혁을 첫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도 규제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규제개혁전담기구를 설치했다. 새정부는 대표적으로 문 정부 시절 신설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국제적 기준에 맞추고,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국내 투자가 어렵다", "기업인들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며 규제완화를 시사했다.
또 대선 공약에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주 52시간제 관련 유연근무제 확대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규제개혁 의지가 높았지만, 실제 실적은 기대에 못미친 적이 많았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또 규제는 공무원의 힘과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어서 공무원의 저항도 막아야 한다. 입법 숫자로 정부와 국회가 평가받으면서 규제가 양산될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규제를 폐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생긴 규제를 없애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해 새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 신산업과 융합산업이 늘어나는데 기업들의 도전을 막는 규제는 적극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