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도 빗물터널

      2022.08.10 18:28   수정 : 2022.08.10 18:28기사원문
프랑스 파리가 세계적 도시가 된 원동력은 뭘까. 도시 전문가들은 잘 짜인 하수도망을 꼽는다. 총연장 2300㎞인 이 지하공간엔 생활용 오수관뿐 아니라 지상에서 모은 빗물도 흐른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딸의 연인을 업고 피신했던 곳이다.



8일 하룻밤 사이 서울 강남이 물폭탄으로 쑥대밭이 됐다. 현대 도시는 원천적으로 폭우에 취약하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탓이다. 서울처럼 불투수(不透水) 면적 비율(2013년 기준 54.4%)이 높으면 빗물이 하수도관을 통해 하천으로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 시간당 100㎜ 가까이 쏟아진 이번 호우에 강남 일대가 잠긴 건 하수관 용량이 작아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도 서울은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당시 나온 대책이 '대심도(大深度) 빗물터널' 건설계획이었다. 지하 30~40m 깊이에 대용량의 배수관을 설치해 빗물을 저장했다가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개념의 프로젝트였다. 기존의 하수관이 골목길이라면 빗물터널은 고속도로에 비견되는 셈이다.

상습 침수지역 7곳에 빗물터널을 건설하려던 이 계획은 이후 뒤틀려 버렸다. 오세훈에서 박원순으로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양천구의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만 남기고 죄다 백지화됐다. 수십년에 한번 내리는 폭우에 대비해 1000억원 이상씩 예산을 투입하는 토목공사판을 과도하게 벌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휘둘린 결과였다.

그러나 기후위기를 내다보지 못한 대가는 참담했다.
이후 서울에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양천구는 끄떡없었지만, 강남 일대는 2020년에 이어 올해도 큰 피해를 입었다. '토건 공화국'이니 하며 전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논리에 눈이 멀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 꼴이다.
기상이변이 일상화된 지금이야말로 우리네 대도시의 치수(治水)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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