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되풀이되는 수해'..땜질식 처방이 문제다
2022.08.17 05:00
수정 : 2022.08.17 12:52기사원문
<편집자주> 지난 8일 수도권에 내린 집중 폭우로 서울 강남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 아무리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량이지만 고질적인 상습 침수지역이란 오명은 침수피해가 컸던 지난 2010, 2011년때와 판박이었다. 100여년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서울 시내 주요 도로를 집어삼켰고, 도심은 마비됐다.
지난 2010년과 2011년에도 서울 강남 일대는 침수피해를 겪었다. 서울시는 2015년 '강남역 일대 침수취약지역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지만, 설계 문제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인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침수때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배수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땜질식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본지는 총 3회에 걸쳐 매년 되풀이되는 수해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중앙정부, 지자체, 전문가 등과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16일 중앙 정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약 100년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 등 중부지역을 휩쓸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가 폐쇄되고, 지하철까지 운행이 중단됐다. 수십개의 시내 버스 노선도 운행에 차질을 빚어 일부 시민은 귀가를 포기했다. 지난 11일 현재 거주지가 파손되거나 침수된 이재민은 800여명에 달했고, 주로 수도권에 피해가 집중됐다. 철로가 침수돼 기차 운행이 중단됐는 가 하면 제방 유실, 옹벽붕괴, 수리시설 침수 등 각종 피해가 잇따랐다. 폭우로 맨홀 등에 빠진 실종자가 안타깝게 사망한 채 발견됐고, 집중 호우에 농작물을 살피러 나섰던 노부부도 참변을 당했다. 도심 곳곳 빗물 배수구는 각종 쓰레기들로 배수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역류하는 가 하면 역류 압력을 이기지 못해 맨홀 뚜껑이 휩쓸려 실족 실종자들이 발생했는 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 2010년과 2011년 폭우 피해 이후 서울시 등이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땜질식 처방'으로는 침수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해 반복속에 일관되지 못한 정책
이번 폭우에 특히 서울 강남일대 피해가 컸던 이유는 주변보다 지대가 10m 이상 낮아 서초, 역삼 등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물이 고이는 항아리 지형인 데다 반포천 상류부의 통수능력이 부족한 탓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일관된 수해대책이 아쉽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11년 수해 대책으로 서울지역 7곳에 지하 대형 배수관 역할을 하는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 계획을 발표했지만,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재임한 10년간 대규모 토목 공사 대신 친환경 빗물저감대책을 추진한다는 기조 하에 이중 6곳은 백지화됐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빗물저류조가 설치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당역 환승센터 인근에 위치한 빗물저류조가 가장 큰 규모로 만들어졌는데, 빗물 저류량이 4만5000t 규모 수준이다. 강남구에도 2015년 삼릉공원에 빗물저류조를 설치했지만 저류량은 6748t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8일 서울시를 강타한 집중호우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빗물저류배수시설의 경우 소규모 빗물저류조에 비해 피해 예방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시간당 95~100mm의 집중 호우를 처리할 수 있는 32만t 규모의 저류시설을 보유한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이 건립된 양천지역에서는 이번에 침수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양천지역은 빗물저류배수시설이 있기 전까지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서울시는 최근 향후 10년간 1조5000억원을 들여 순차적으로 대심도 터널 건설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대심도 터널 투입 비용 대비 정책적 효과나 침수피해 예방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 뒤 추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침수 반복' 반지하 이주대책 현실성 의문
일가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도 시급하다. 서울시는 이번 사고 이후 침수 우발지역인 '반지하' 주택을 순차적으로 없애고, 현재 반지하 거주민들이 추가적인 부담없이 고품질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내 노후한 다가구 및 다주택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가 돼 있지 않은 게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시내 전체가구중 5% 수준인 약 20만호(2020년 기준)가 지하·반지하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통계는 이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또 주거환경 정비를 진행한다 해도 서울시 등 일부를 제외하곤 재정자립도가 낮아 지방정부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일단 서울시는 시내 지하·반지하 가구의 정확한 위치와 침수 위험성, 취약계층 여부, 임대료와 자가 여부 등을 파악하고,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급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반지하 신축을 전면 불허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일각에선 대심도 저류배수시설 재추진이 자칫 토건사업을 빙자한 특혜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향후 관련업계 등의 의견을 반영해 효율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수 피해 걱정? 집값이 더 걱정"
이와 관련 반지하 주택에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저소득층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반지하 공공임대주택에 거주 중인 1만80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9.4%가 다른 지역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수로 인한 피해보다 당장 살아갈 곳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 변화가 수시로 발생할 때를 대비, 땜질식 처방보다는 기후변화시대에 대비한 근본적인 침수피해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한다. 빗물 배수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도심내 빗물 배수구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비와 함께 맨홀 뚜껑의 경우 실족 위험방지 장치를 의무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무엇보다 '소잃고 고친 외양간이 다시 소를 잃는' 경우가 반복되지 않도록 최악의 재난 상황을 감안한, 재난대비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반복된 재난도 문제지만, 이상기후 변화 징후가 날로 뚜렷해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근본적인 시스템 재정비가 시급하다"며 "관련 당국은 재해 사전 예측 및 경보 시스템을 비롯해 관련 인원 확충 등 총체적인 비상계획 메뉴얼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