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휩쓴 가뭄에 세계 경제 흔들, 물류부터 제조까지 타격

      2022.08.22 15:14   수정 : 2022.08.22 16:2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북반구가 기록적인 폭염 및 가뭄에 시달리면서 산업과 무역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는 강이 말라 수운이 마비되는 한편 발전소가 멈춰 전기가 모자란 상황이다.

■폭염·가뭄에 북반구 몸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올 여름 북반구를 휩쓴 가뭄이 점차 뚜렷하게 물류와 전력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22일까지 33일 연속 고온 경보를 발령했고 같은날 기준 11일 연속 고온 적색 경보를 유지했다. 적색 경보는 고온 경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것으로 기온이 40도 이상일 때 발령된다.
고온 경보가 이토록 오래 이어지는 상황은 1961년 관측 이래 처음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가뭄이 심각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안드레아 토레티 공동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최근 500년 동안 가장 심각한 가뭄이 2018년이었다며 올해는 그보다 심하다고 분석했다.

대서양 건너편에도 물이 부족하다. WSJ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을 인용해 미국 서부가 이미 20년 전부터 가뭄 상태였지만 지금은 1200년만에 최악의 가뭄이라고 지적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가뭄의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라니냐’를 꼽았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동태평양의 차가운 바닷물이 제트기류를 북으로 밀어 올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강수량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WSJ는 라니냐가 보통 9~12개월 지속된다며 올해 라니냐 현상이 내년 2월까지 지속된다고 예측했다.

■농업부터 물류까지 마비

우선 눈에 띄는 가뭄 피해는 농업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농가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올해 목화 생산량이 40% 이상 감소한다고 보고 있으며 스페인의 올리브 오일 생산량도 약 3분의 1 가까이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시에라 네바다 산에 쌓인 눈이 너무 빨리 녹아 물이 부족한 상황이며 현지 당국에 따르면 809㎢의 농지가 물 부족 때문에 파종 없이 버려져 있다. 상추 등 주요 야채 생산지로 알려진 애리조나주 유마 카운티에서는 가뭄 때문에 올해 최소 3억4000만달러(약 4555억원)의 농작물 손실이 예상된다. 중국에서도 쓰촨, 충칭, 후베이, 장시, 안후이 등 창장강 일대 6곳에서 지금까지 서울 면적의 11배에 해당하는 농경지(6500㎢)가 가뭄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다음 문제는 물류다. 특히 유럽과 중국 등 강에 화물선을 띄우는 수운 국가들은 물길이 말라 배가 멈췄다. 스위스 알프스의 눈에 의지하던 독일의 라인강은 가뭄으로 눈이 사라지면서 수위가 급감했다. 독일연방수문학연구소(BfG)는 지난 12일 기준 주요 수위 측정 지점인 독일 카우프의 수위가 40㎝라고 밝혔다. 이는 바지선이 운항할 수 있는 최소 수위다. BfG는 머지않아 수위가 30㎝ 미만으로 낮아진다고 관측했다. 라인강은 서유럽 내륙 수상 운송의 80%를 담당하고 있으며 석유를 비롯한 독일 내 에너지 운송의 30%를 소화한다. 헝가리의 다뉴브강과 이탈리아의 포강 수운도 물이 부족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중국에서도 양쯔강 수위가 150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가면서 수운에 차질이 생겼다. 중국 내 물류의 16%는 내륙 하천과 연안을 통해 이동한다.

■전력난 불가피, 제조업 타격

더욱 심각한 위기는 에너지다. 중국 서부의 쓰촨성은 전력의 80%를 수력 발전으로 충당했다. 현지 당국은 최근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져 전력이 모자라자 인근 간쑤성에서 전기를 빌려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쓰촨성 정부는 21일 발표에서 15~20일 진행 예정이었던 산업시설 단전 조치를 25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전력의 약 90%를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노르웨이는 저수지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서 전력 수출 감소를 논의중이며 프랑스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멈추게 생겼다. 원자력 발전소는 차가운 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식히고 물이 따뜻해지면 이를 다시 배출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발전소 인근 강이나 바다의 생태계 보전을 위해 온수 배출량을 규제하고 있다. 문제는 극심한 가뭄으로 끌어다 쓸 물이 부족한데다 원자로에 붓기 전부터 물이 따듯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위로 인해 더 뜨거워진 물을 다시 배출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프랑스 루아르강 인근 원자력 발전소들은 수온 규정을 지키기 위해 전력 생산을 줄이는 방안까지 검토중이다. 독일의 경우 러시아 천연가스의 대체재로 석탄 화력발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강이 말라 석탄을 옮기기 어렵다.

WSJ는 이러한 전력 문제가 결국 기업들의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중국 쓰촨성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지리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과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업체인 CATL 등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쓰촨성 정부는 주거 등 필수 시설 전력이 급하다며 이러한 산업시설에 들어가는 전기를 제한했다. 세계 최대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중국의 진코솔라 역시 전력 부족 또는 공급 중단으로 정상 조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쓰촨성에서 전력을 끌어 쓰는 상하이시에 위치한 시설들도 연쇄적으로 곤경에 처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22일 보도에서 쓰촨성의 전력 위기가 전기차를 비롯한 신에너지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 발생한 이상 현상이 앞으로 더욱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가뭄은 토지 황폐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00년 이후 29% 증가했다.
미국 투자정보업체 무디스인베스터스서비스는 여행, 제조업, 농업 등에 미치는 장기간의 가뭄과 폭염의 영향이 남유럽 일대 국가들의 신용등급에 장기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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