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파렴치·양두구육', 모욕죄 맞지만…대법 "처벌 안돼"
2022.08.25 11:07
수정 : 2022.08.25 11:0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누군가에게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 등의 표현을 썼다면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할까. 대법원 판단은 '그렇다'지만, 만약 어떤 이의 공적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비판적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면 처벌 가능성은 낮다. 비정치적 영역에 비해 정치적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보다 폭넓게 인정된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송일준 전 광주MBC 사장의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 선고유예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송 전 사장은 한국PD연합회장이던 지난 2017년 7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고영주 전 이사장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자신의 SNS에 고 전 이사장이 고발 당했다는 기사를 올리고 "간첩조작질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 매카시스트,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 역시 극우부패세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검찰은 이를 고 전 이사장에 대한 모욕죄로 보고 지난 2019년 송 전 사장에 대해 벌금 1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했으나, 송 전 사장이 불복해 정식재판이 열렸다.
1심은 "이 사건 표현과 간첩조작질은 모두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고, 위법성도 인정다"며 송 전 사장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유예했다.
2심은 '간첩조작질'의 경우 구체적인 사실 적시로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다른 표현들의 모욕죄를 인정해 1심과 같이 벌금 50만원 선고유예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송 전 사장이 사용한 표현이 모욕죄에 해당된다고 본 원심 판단을 수용하면서도, 공적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는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떤 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더라도 그 글이 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이라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그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 판례다.
이 때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지위와 그 관계, 표현행위를 하게 된 동기, 경위나 배경,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와 구체적인 표현방법, 모욕적인 표현의 맥락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결론이다.
이 사건의 경우, 송 전 사장은 당시 MBC PD협회장으로 MBC 경영진과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는데, MBC를 감독하는 기관인 방문진 이사장인 피해자가 경영진을 비호한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적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 전 사장이 게시한 글의 전체적 내용은 '고 전 이사장이 '대한민국의 양심과 양식을 대표하는 인사가 맡아야 할 공영방송 MBC의 감독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자격이 없고, 피해자가 이사장 자리에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파렴치', '철면피' 또는 '양두구육'은 언론이나 정치 영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할 때 흔히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언론이나 정치 영역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 표현들이 모욕죄 구성 요건에는 해당하지만, 공적 사안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사용됐다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