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뿌려놓은듯 새하얀 메밀꽃 물결… 그렇게 가을이 왔다

      2022.08.26 04:00   수정 : 2022.08.26 04: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평창(강원)=이환주 기자】 운명의 장난으로 헤어질 연인에게 "10년 뒤 '메밀꽃 필 무렵' 평창역 앞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면 두 연인은 재회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리움의 크기와 상관없이 만나지 못할 확률이 크다'이다. 대표적인 구황작물인 메밀은 1년에 두 번 수확한다. 여름 메밀은 6월 무렵, 가을 메밀은 9월 즈음 꽃이 핀다.

올해는 가을 메밀꽃 필 무렵 평창을 직접 찾아 이효석 작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해발 700m 청옥산에 올라 동행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우리 사이 변치 말고 10년 뒤 다시 이곳에 함께 오자."

■ 이효석 작가의 고향 평창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강원 평창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 작가의 고향이다.
1907년 태어나 1942년 35세 청년시절 사망한 그는 생의 대부분을 일제강점기 하에서 보냈다. 초기 작품은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동반자 작가' 성향을 보였으나 후기에는 메밀꽃 필 무렵 같은 순수 문학 작품을 주로 썼다.

봉평면 창동리에 위치한 '효석 달빛언덕'은 이효석의 생애와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소설의 배경인 봉평을 배경으로 책 박물관, 근대문학체험관, 나귀광장 등으로 조성됐다. 근대문학 체험관 내에 조성된 공간에서는 하늘 거리는 천을 배경으로 소설의 백미인 메밀꽃 밭 한 가운데이 있는 듯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이효석 생가인 초가집 마루에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한숨을 돌려도 좋다. 이효석 생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평양 '푸른집'을 볼 수 있다. 1937년에서 1940년까지 이효석이 살았던 집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졌지만 푸른 담쟁이가 벽을 타고 자라 '푸른집'으로 불린다.

효석달빛언덕 인근에 위치한 '이효석문학관'에서는 인간 이효석의 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그가 소설을 연재한 고서적은 물론 그의 작품 활동 연대기, 그가 살았던 방을 재현한 공간 등이 구현돼 있다.


■ 평창효석문화제는 올해 취소

장마철 거센 비가 할퀴고 간 여파는 평창에도 이어졌다. 매년 9월 메밀꽃이 만개할 때 열리던 '효석문화제'는 올해는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코로나19 확산과 집중호우로 인해 메밀밭이 소실된 탓이다. 대신 만개한 백일홍과 함께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고 평창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백일홍 축제'가 다음달 9일부터 12일까지 평창읍에서 3년 만에 다시 개최된다. 9월이 되면 평창강 주변은 백일홍 1000만 송이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백일홍은 100일 동안 붉게 핀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일홍은 붉은색, 주황색, 흰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꽃을 피운다. 꽃말도 여럿으로 알려졌다. 붉은색은 '그리움', 주황색은 '헌신', 흰색은 '순결'을 노란색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 하늘과 가까운 곳…육백마지기

평창 청옥산에 있는 '육백마지기'에 오르면 한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을 즐길 수 있다. 거대하게 솟아 있는 풍력 발전기와 함께 계단 형태로 내려지르는 푸른 벌판, 평창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높이 1255m의 청옥산은 곤드레 나물과 청옥이란 산채가 자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육백마지기'는 정상 부근의 평탄한 지형으로 볍씨 600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이렇게 불리게 됐다. 육백마지기는 축구장 여섯개 정도를 합친 면적이다.

고원지대이지만 도로가 잘 개설돼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지역이다. 특히 최근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차박'을 하는 사람들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최일선 평창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인공의 빛이 없는 날 육백마지기에서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검은 도화지에 하얀 메밀꽃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풍경이 된다"며 "메밀꽃을 본 적 없는 어린 친구들에게 밤하늘의 별이 하얀 팝콘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찾은 가족이라면 대관령하늘목장에 올라 말과, 양과, 소를 직접보고 먹이를 주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광대한 초지를 트럭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한 여름에도 외투가 필요할 정도로 서늘하다.
총 400여 마리 젖소, 면양 100여 마리, 말 40 여 마리가 살고 있다.

hw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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