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덮친 고물가 고통… 밥 한 끼에도 지갑 걱정
2022.08.29 05:00
수정 : 2022.08.29 18:05기사원문
■햄버거 프랜차이즈점 커피값도 올라
이른바 불금인 지난 26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부근 A외국계 회사 한 프랜차이즈점에는 노인 9명이 제각기 앉아 있었다.
그나마 다른 일반 커피숍에 비해선 여전히 가격이 저렴해 값이 올랐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매장을 이용한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고 싶어 가게를 자주 찾는다는 퇴직 공무원 B모(75)씨는 "동네 도서관이 아침엔 열지 않아서 이곳으로 온다"며 "물가가 전체적으로 올랐는데 식사를 줄일 순 없으니까 책 사는 것을 줄였다"고 했다.
친구들과 한 식당에 들른 C씨는"여긴 200~300원 올랐지만 다른 식당은 30%가량 다 올랐다"며 "식사로 싼 메뉴를 찾게 된다.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1만원이 넘어서 대신 7000원짜리 뷔페나 동태탕 집에 간다"고 말했다. 음식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지갑이 얇은 노년층들이 조금 더 싼 곳을 찾는 경향이 많아지는 모습이다.
■장기 두는 인원 석달새 100명 늘어
1500원짜리 커피값도 부담되는 노인들은 탑골공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탑골공원에서 장기판 등을 대여해주는 장기천국지상낙원봉사대는 최근 장기 두는 인원이 하루 평균 200명 정도로 2~3개월 전보다 100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기천국지상낙원봉사대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외출하는 사람이 는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물가가 오르면서 갈 곳 없는 노인 분들이 모이는 것 같다"며 "종로 내 기원이나 한강 주변에 장기 두는 곳도 있지만 모두 돈을 내야 해서 어르신들이 결국 무료인 이곳으로 온다"고 귀뜸했다.
커피값과 장기 대여료까지 아끼는 것을 비롯해 아예 밥값을 줄이기 위해 이곳 무료급식도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80대 이모씨는 "더운 여름엔 햇볕이 뜨거워서 진짜 갈 데가 없다"며 "올해는 너무 덥고 비도 많이 와서 지난주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페 같은 곳은 돈 때문에 못 간다. 연금이 매달 80만원 나오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더해 생활하는데 애들한테 손 벌릴 순 없다"며 "여기서 나눠주는 무료 급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4시쯤 집으로 돌아가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커피를 좋아해도 돈 때문에 카페보다는 주로 근처 자판기를 애용한다.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은 200~300원 정도로 카페보다 훨씬 싸다. 하지만 아이스 커피는 뜨거운 일반 커피보다 가격이 더 비싸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날이 종종 있다고 했다.
30년째 공원 부근에서 커피자판기를 운영해오는 고모(67)씨는 "설탕값, 종이컵값이 다 올라서 버티다 못해 지난해 10월 커피가격을 (한 잔에) 300원으로 올렸다"며 "그때부터 매출이 20%는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경제 취약층인 노인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가 앞장서서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한편 취약한 안전 고리를 보강하고 복지 그물망을 촘촘하게 하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