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도배한 ‘현수막 전쟁’… 교묘히 법망 피해 여전히 난립

      2022.08.31 17:59   수정 : 2022.08.31 17:59기사원문
강남역 사거리 일대에 집회에 사용된 현수막이 장기 방치되면서 도시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보수 성향 단체들도 기존 현수막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내걸면서 현수막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관할 지자체가 불법 현수막 자체 정비안까지 마련했지만 현수막을 내건 단체들의 꼼수로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법 현수막에 시민들 피로감 호소

8월 31일 찾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및 강남역 사거리 인근에는 '삼성은 범죄에 사죄해라', '삼성 힘내라' 등의 상반된 내용이 담긴 현수막 10여개가 걸려있었지만 관련 시위 개최자는 보이지 않았다.

해당 현수막을 게시한 이들은 과거 삼성 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한 협력업체 대표 A씨와 보수성향 시민단체 등이다.

A씨는 삼성의 부당대우로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취지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신자유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 측의 경우 '삼성을 응원한다'는 취지의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이들 단체는 수일에 걸쳐 여러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지난 19일에는 A씨 현수막을 화살표로 가리키며 '삼성에게 돈을 달라는 것이냐'는 등의 현수막을 게시한 뒤 30일에는 '깡패 노조 해체하라'는 현수막을 바꿔 걸었다.

관련해 인근을 오가던 시민들은 해당 현수막에 적힌 과격한 내용 탓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다. 직장인 50대 박모씨는 "강남 한복판이 언제부터 갈등 중심지가 됐나"며 "극단적인 내용을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주민 이모씨(40)도 "보기에 흉물스러운 현수막의 숫자가 최근 더 늘어나고 있어 생활하기가 불편할 정도"라며 "아이들이 (현수막 내용을)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처하다"고 토로했다.

■법 미비에 '꼼수 현수막' 철거 어려워

현수막이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도시미관까지 해치고 있지만 철거는 쉽지 않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제8조에 따라 경찰에 집회 신고된 현수막 등 광고물의 경우 단속 배제 대상에 해당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정비대상에서 제외된다. 시위가 열리지 않더라도 집회 신고만 연장하면 현수막을 장기간 내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강남역 일대 걸려 있는 현수막도 집회 종료 이후 철거하지 않은 것이다. 또는 집회·시위 신고 이후 집회는 열지 않고 현수막만을 내 건 사례에 해당한다.

관할 지자체인 서초구청은 이 같은 '꼼수 현수막' 철거를 위해 지난달 11일 자체 법률 검토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주요 시위 현수막 일제 정비 방안을 마련했다. 이어 지난달 12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강남역 사거리 주변 등 3개 구역의 현수막 50여개를 철거했다. 하지만 정비안을 마련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꼼수 현수막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집회 신고 후 미개최로 판단돼 현수막 정비 안내를 내릴 때 '집회 중인데 왜 철거해야 하냐'며 주장하는 분들이 많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옥외광고물법 등 조항을 비교·참조해 최대한 철거하는 방향으로 안내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내용을 담은 '꼼수 현수막'의 방치를 막기 위해선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한정적으로 현수막을 내걸 수 있도록 설치 기간 등을 법령에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수막 내 혐오 표현이 이 표현의 자유로 오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범위를 지정할 필요가 있다"며 "각 지자체가 현수막 정비 관련 조례를 제정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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