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추락, 엔-위안보다 빨라...환율 1400원 가시권
2022.09.04 11:02
수정 : 2022.09.04 11:02기사원문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글로벌 경기 불안 우려에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전 세계 주요국 통화가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달러·원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13년 5개월 만에 1363원을 돌파했다. 위안화나 엔화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이 과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입하는 위안화의 특수성과 140엔이라는 상징적 저항선에 다다른 엔화와 달리 원화는 전고점이 무너져 당분간 상승세 지속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누적되는 무역적자도 원화 약세 요인이다.
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7원 오른 1362.6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2009년 4월1일(1379.5원) 이후 13년 5개월여 만에 가장 높다. 장 마감 직전에는 1363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국발 긴축 우려 등으로 달러 강세는 올해 내내 이어졌지만 근래 들어서는 유독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8월29일 하루 만에 19.1원 폭등한 환율은 이후 2거래일간 12.8원 하락한 뒤 9월1일 재차 17.3원 급등했다. 최근 3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최근에는 위안화와 엔화 등 아시아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2주간(8월22일~9월2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2.8% 떨어졌다. 반면 엔화는 2.13%, 위안화는 1.28% 각각 하락했다.
중국 정부의 환율 개입 우려에 따른 외국인과 기관의 투기적 매수수요(롱플레이)가 원화에 개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은 자국 통화 가치 하락 폭이 지나치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나 중앙은행이 개입한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위안화의 약세 폭이 커지면 중국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해외펀드 등 외국인과 기관에서 약세 베팅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화는) 위안화 블록 통화에 편입되어 있는 인식이 강한 만큼 위안화 약세 베팅이 어렵다면 원화 약세를 기대하는 매수세가 유입된다"며 "자연스레 위안화에 비해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변동성이 커지는 요인도 있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전고점을 넘으면서 상단이 열려 있어서 변동 폭이 확대되는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엔화의 경우 심리적 저지선은 '140엔'에 다다르며 원화 대비 변동성이 비교적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 2일 도쿄외환시장에서 24년 만에 달러·엔 환율은 장중 140.32엔까지 상승했다.
정 위원은 "엔화는 140엔이라는 상징적인 수준이 막혀 있어 최근 절하폭이 비교적 덜해 보이지만 그 이전에는 가파르게 올랐다"며 "기술적인 상단에 오르면서 최근 지지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달러·엔 환율은 올해 들어 18% 넘게 상승했는데, 이는 1979년의 19% 이후 43년 만에 최대 상승 폭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원화 약세에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시장 개입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국내 상황도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94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4월부터 적자 행진을 이어가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여 만에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무역 적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에너지 수입에서 비롯됐다"며 "에너지 수입가격의 하향안정화로 무역적자폭 축소 조짐이 보여야 원화 약세가 진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긴축 불안 우려가 여전하고 수일째 연고점이 경신되는 환경이 지속되는 만큼 1400원 수준까지 환율 상단을 열어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의 구두 개입에도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흐름을 보이지 않는 데다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김 연구원은 "1400원은 2차 심리적 저항선으로 평가받는다"며 "경기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최근 심리적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이라 각종 경제지표에 따라 등락 폭이 좌우될 것"이라며 "2차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 수준까지 상단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