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고자 할 때 〇〇을 떠올리는 것은 최고의 묘방이다

      2022.09.10 13:44   수정 : 2022.09.10 13:4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한 고을에 서로 어울려 지내는 두 명의 중년 사내가 있었다. 이 둘은 평소 술을 좋아해서 허구한 날 취해 있었으며, 음식도 가리는 것이 없어 짜고 기름진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었다.

논일이나 밭일은 과로일 뿐이니 체력소모도 많았다. 일 없는 쉬는 날은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이 둘은 어느 날도 ‘주막에 가서 막걸리라도 한잔할까?’하고 길을 가던 중에 한 의원과 마주쳤다.

의원은 그들의 옆을 지나치면서 사내들을 얼굴을 우연히 쳐다보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면서 ‘얼굴에 병색이 가득하군’하고 생각했다.

그 사내들은 의원의 ‘쯧쯧쯧’거리는 소리에 의원을 멈춰 세웠다.
그러더니 “아니 왜 기분 나쁘게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려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요?”하면서 따져들었다.

그러자 의원은 “내 이 마을의 의원이요.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자네들의 얼굴을 보니 병자의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상스러운 소리를 냈던 것 같소. 미안하오. 사과를 했으니 이제 제 갈 길을 갑시다.”하면서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 했다.

의원이 하는 말에 두 명중 약간 키가 작은 사내가 “그 병자의 얼굴이란 게 도대체 뭐요. 둘 다 그런 것이요? 아니면 한 명만 그런 것이요? 누가 더 문제가 있는 것이요?”라고 궁금해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키가 큰 사내는 “이 양반이 의원이면 의원이지. 어디 약방도 아닌 길거리에서 환자 호객행위를 하네. 예끼~ 이 양반아. 누가 그러면 겁을 내고 탕약이라도 지어 먹을 줄 알았소? 하하하”라면서 비웃었다.

의원은 어이가 없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런 말들은 익히 양방에서도 들어봤던 터라 단지 ‘이 사람은 결국 병들 사람이구나’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그런데 키 작은 사내가 사정을 했다. “내 이 사람보다 약간 형이요. 이 사람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니, 이 사람의 말을 신경쓰지 마시고 어디 한번 진맥이라도 짚어주시오.”라는 것이다.

키 큰 사내는 형의 말에 잠자코 있었기에 의원은 길가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진맥을 해 보고자 했다.

의원은 두 사내의 맥을 짚어보니 둘 모두 맥이 빠른 삭맥(數脈)이 나타났다. 형인 사내의 맥은 약간 미약함이 느껴지면서도 긴장감과 함께 삽맥(澁脈)이 있었고, 동생인 사내의 맥은 마치 바람이 너무 가득 찬 풍선을 가지고 노는데 자칫 쉽게 터질 듯한 현맥(弦脈)이 느껴졌다.

삽맥은 대표적인 혈액순환 장애에 의한 어혈(瘀血) 맥이고, 현맥은 심혈관의 흥분도가 높은 맥으로 보통 고혈압에서 자주 잡힌다. 관형찰색을 해 보니 형인 사내는 덩치는 작았지만 얼굴이 검붉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으며, 동생인 사내는 얼굴이 창백하면서도 붉고 비만하면서 진맥을 하는 동안에도 얼굴 부위에서 땀을 흘렸다.

의원은 사내들에게 최근 불편한 증상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키가 작은 형인 사내는 “내 얼마 전에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이 감각이 없고 마비되어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원에게 침이라도 맞아 볼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다시 저절로 힘이 들어와서 침 맞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었죠.”라고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일과성 뇌허혈발작이었다. 동생인 사내는 머뭇거리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저는 몇 년 전부터 간혹 코피가 나고 그치기를 반복합니다요. 그런데 코피가 날 때면 뒷목이 뻐근하고 눈이 빠질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가 코피가 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서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좋아진 것을 보면 내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 아니겠소.”라고 하면서 거들먹거렸다.

의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

“자네들은 둘 다 모두 3년 이내에 중풍이 올 것이네. 의서에 보면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거나 손발에 힘이 적거나 기육이 약간 당기는 것이 중풍의 전조 증상이다. 이것이 나타나면 3년내에 반드시 풍(風)이 온다’라고 했네. 이 내용은 형인 자네에게 해당하는 말이네. 자네는 어혈로 인해서 혈맥이 막혔다 뚫렸다가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으로 어혈을 치료하지 않으면 숟가락을 놓칠 뿐만 아니라 아예 팔다리에 마비가 와서 걷지를 못할 것일세.”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그리고 동생 자네 또한 이미 수차례 중풍의 발병 고비를 넘긴 것이네. 의서에 보면 ‘양(陽)이 성하면 코피가 난다’고 했거늘, 자네의 코피는 마치 비가 많이 내린 후 강가의 강둑이 무너져 내린 것과 같지. 강둑이 무너지지 않으면 저수지의 큰 제방이 무너지게 될 걸세. 코 역시 강둑에 해당해서 이런 일이 자네 몸에서 일어났으니 만약 코피가 나지 않았다면 자네는 결국 뇌혈맥이 터져서 역시 심각한 중풍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이네. 지금도 눈 흰자위가 마치 황달에 걸린 것처럼 황적색을 띠는 것을 보면 간화(肝火)와 함께 풍기(風氣)가 치성하네.”라고 걱정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형인 사내가 물었다. “의원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풍이 안 오게 하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저는 중풍으로 몸져 누워있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것도 두렵습니다. 집에는 그래도 저만 바라보는 처자식들이 있습니다.”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동생인 사내는 의원과 형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씩씩거릴 뿐이었다.

의원은 이들에게 약방문을 적어서 처방을 해 주었다. 그런데 약방문치고 많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첫째, 밤에 잠들기 전에 항상 앞가슴 앞에서 허공에 ‘죽을 사(死)’를 네 번을 쓰고 잠을 청한다. 두 번째, 금주와 함께 식이를 조절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일상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한다. 세 번째, 침치료와 함께 유풍탕, 천마환을 복용하거나 가감방풍통성산으로 예방한다.'라는 내용이었다.

형인 사내가 물었다. “다른 것은 알겠는데, 죽을 사(死) 자를 쓰라는 것은 어떤 의도요?”
의원은 “만약 자네가 병사로 인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어떤 병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네. 죽음을 떠 올리면 온갖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그 어떤 약을 먹는 것보다 최고의 묘방(妙方)이 되네. 반대로 병을 만나고도 오히려 멋대로 하여 모든 일에 삼가지 않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니 비록 좋은 약이 있더라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네.”
이 말을 들은 형인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는 집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을 주마간산처럼 스쳐 지나갔다.

형인 사내는 동생인 사내에게 일렀다. “내 앞으로 너와 잠시 절교를 해야겠다. 술을 끊어야겠구나. 그리고 이날로 해서 3년 후에 이 자리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꾸나.”라고 했다.

그러나 동생은 “아니 형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요. 돌팔이 같은 의원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그렇게 모든 것을 바꿔버리면 어쩌자는 것이요. 저는 그냥 이대로 살라요.”라고 투덜거렸다.

형은 약방문을 들고서 자리를 떠났고, 동생인 사내는 형의 말에 당황해하면서 형의 뒤를 쫓아갔다. “형님~ 형님~”
이후 형인 사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의원을 찾아 침치료도 열심히 하고 예방약도 복용했다. 기본적으로 술도 끊고 식이조절도 잘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데 동생은 예전처럼 술을 마시고 더더욱 화를 내고 식이조절은 하지 않아 배가 남산처럼 더욱 볼록해 졌다. 그러더니 3년이 되기도 전에 결국 중풍에 걸려 우측 팔다리에 마비가 와서 걷기는커녕 글도 쓰지 못했으며 옷고름을 매지도 못했다. 와사풍(喎斜風)에 말도 어눌하면서 더듬거리고 상대방의 말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동생인 사내는 그 의원을 찾아 “제가 전에 의원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중풍에 걸리게 되었으니 후회가 막심합니다. 이제라도 저를 죽음에서 꺼내주신다면 다시 태어나게 한 은혜로 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동생 사내를 최선을 다해 치료했으나 그래도 후유증이 남아 팔은 구부정하고 다리를 끌면서 걸어야 했다. 동생인 사내의 걷는 모습은 누가 봐도 중풍환자였기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리듯 수군덕거렸다. 그로 인해 그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돈 될 만한 일도 맡겨주지도 않으니 밥만 축내는 식솔이 되어 멍하니 툇마루에 앉아 하늘만 쳐다보는 날이 반복되었다.

중풍으로 죽진 않았지만 결국 하루하루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동생인 사내는 중풍에 걸린 후 이제라도 마음속에 죽을 사(死)자를 써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들기 전에 예방하는 것은 수고로움이 덜 하지만 이미 병들고 난 후에 되돌리는 것은 이처럼 후회가 막심한 것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명의경험록> 一洞有二人, 皆與余善, 一則多慾, 一則嗜酒. 診其脈, 左手俱微, 人迎盛, 右脈滑大, 時常手足酸麻, 肌肉蠕動, 此血氣虛而風痰盛也. 余謂二人曰, 三年內, 俱有癱瘓之症, 二君宜謹愼, 因勸其服藥以免後患. 一信此言, 每年服搜風順氣丸ㆍ延年固本丸 各一料, 後果無其患, 一人不聽, 縱飮無忌, 未滿三年, 果有中風卒倒, 癱瘓語澁. 求治於余曰, 悔不聽君言, 致有此症, 願君竭力救我殘喘, 則再造之恩也. 余以加減養榮湯, 幷健步虎潛丸兼服, 服周年始愈.(같은 고을에 나와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욕심이 많고 한 사람은 술을 좋아했다. 맥을 짚어보니 둘 다 왼손은 미약하며 인영맥은 성하였고 오른손은 활대하였으며, 손발이 자주 시큰하고 저리며 살이 떨렸는데 이는 혈과 기가 허하여 풍담이 성한 것이었다. 내가 두 사람에게 “3년 내에 둘 다 중풍이 올 것이니 자네들은 생활을 조심해야 하네.”라고 말하고 약을 먹으며 병에 걸리지 않기를 당부하였다. 한 사람은 이 말을 믿고 매년 수풍순기환과 연령고본환을 각 1료씩 먹으니 과연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한 사람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술 마시며 조심하지 않다가 3년이 되기도 전에 결국 중풍으로 졸도하여 중풍이 오고 말을 더듬게 되었다. 나에게 치료받기를 청하면서 “자네 말을 듣지 않아서 병에 걸리게 되었으니 후회스럽네. 자네가 힘을 다하여 나를 죽음에서 꺼내준다면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은혜로 여기겠네.”고 말하였다. 내가 가감양영탕과 건보호잠환을 함께 먹도록 처방했더니 1년 동안 먹고 비로소 나았다.)
< 명의잡저> 昔人有云 我但臥病, 即於胷前不時手寫死字, 則百般思慮俱息, 此心便得安靜, 勝於服藥. 此真無上妙方也. 蓋病而不慎, 則死必至. 達此理者, 必能清心克己, 凡百謹慎而病可獲痊. 否則雖有良藥無救也. 世人遇病而猶恣情任性以自戕賊者, 是固不知畏死者矣. 又有一等明知畏死而怕人知覺, 諱而不言, 或病已重而猶強作輕淺態度以欺人者, 斯又知畏死而反以取死, 尤可笑也.(옛날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앓아눕게 되면 곧 수시로 가슴 앞에 손으로 ‘死’라는 글자를 쓰는데, 그러면 온갖 생각이 다 멈추니, 이 마음이 곧 안정되어 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최고의 묘방이다. 대개 병이 들었는데도 조심하지 않으면 죽음이 반드시 이른다. 이 도리를 깨달은 자는 필시 마음을 맑게 하고 사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일을 삼가서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좋은 약이 있더라도 구제할 수 없다. 세상 사람 중에 병을 만나고도 오히려 멋대로 하여 자기를 해치는 자는 본디 죽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할 줄 잘 알면서도 남이 눈치챌까 두려워 숨기고 말하지 않거나, 혹은 병이 이미 중한데도 오히려 억지로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꾸며 남을 속이는 자가 있는데, 이는 또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면서도 도리어 죽음을 취하는 것이니 더욱 우스운 일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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