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피해' 포항 찾아 도시락·빨래 봉사... 재난 지역에 '희망의 다리' 놓다
2022.09.18 18:33
수정 : 2022.09.18 19:42기사원문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표적인 취약계층인 장애인·노약자·결식아동의 삶이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기후위기에 따른 대형 산불, 집중호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힘든 한해가 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선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긴급구호활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는 분주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본 경북 포항을 찾아 명절 직전 터전을 잃은 시민들에게 추석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등 구호 활동을 펼쳐 나갔기 때문이다. 식당과 도시락 가게가 대부분 연휴로 문을 닫은 상황에서 서울과 포항의 업체 정보를 뒤진 끝에 가까스로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불과 40여 직원들이 연휴를 반납하고 서울에서, 포항에서 땀을 흘린 결과였다.
현장을 지휘한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은 "이재민들께서 갑작스러운 태풍으로 집을 잃은 것도 황망할 텐데 민족의 명절 추석 당일에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일만큼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지원 배경을 밝혔다.
포항의 한 교회에서는 지난 7일부터 희망브리지의 세탁구호차 3대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세탁 구호 활동은 희망브리지 직원들이 대피소에서 수거해 온 빨랫감을 특수차량에 3~4개씩 설치된 대용량 세탁기와 건조기로 빨고 말린 뒤 곱게 접어 본래 주인들에게 맞춤형으로 배달해주는 방식이다. 하루에 최대 60가구의 빨랫감 2500㎏까지 세탁하고 있다. 세탁기 용량이 통상 18㎏임을 감안하면 140번 정도 돌아가는 셈이다.
세탁이 완료된 옷을 다시 받은 이재민 A씨는 "빨래가 너무 잘됐다. 세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인데 직접 가져가고 이렇게나 잘 개서 돌려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식사와 세탁 구호 활동 외에도 희망브리지는 태풍 발생 직후 22만5000여점(13일 기준)의 구호 물품을 포항 등 피해 지역에 지원했다.
피해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도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포항에서 신사업을 펼치고 있는 에코프로가 7개 계열사와 함께 100억원을 희망브리지에 맡겼다. KB금융그룹이 10억원을 전해왔고, 래퍼 사이먼 도미닉(정기석)이 1억원을, 배우 겸 가수 김세정, 방송인 유병재가 각각 1000만원을 기부했다. 방송인 박지윤도 바자회 수익금 1000만원을 희망브리지에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많은 분이 성금을 맡겨주셨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이재민들에게 국민 성금을 제대로 전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모금 동참을 호소했다.
지난 3월 동해안산불 이재민들은 많게는 1억원 이상(주택 전소 경우)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태풍이나 호우로 집이 침수된 이재민들은 법이 정한 의연금 지급 상한인 100만원마저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호우와 태풍으로 집이 침수된 가구가 4만세대가 넘어 이들에게 전할 의연금만 400억원이 넘고, 이 밖에도 인명피해, 집의 전파, 반파 등 피해에도 의연금이 전해져야 하는 상황이다. 희망브리지를 비롯한 모금단체들이 모은 국민 성금은 13일 기준 400억원이 채 안 된다.
김 사무총장은 "이재민들과 자원봉사자, 군 장병들이 도로에 쌓인 물건들을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추석 연휴 동안 포항에 지내면서 본 모습은 참혹함 그 자체"라며 "그간 많은 재난에서 도와주신 기업,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지만, 포항을 비롯해 태풍과 호우로 일상이 파괴된 이웃들이 일상을 되찾는 여정에 한 번 더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번 역대급 태풍 외에도 올해는 유독 대형 재난이 많이 발생한 해였다. 지난 3월 경북 울진과 강원·삼척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213시간 동안 지속되며 최장 기간·최대 피해 산불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8월 서울과 경기에 내린 폭우는 기상 관측 이래 최다 일일 강수량을 기록했다.
올해 이 모든 재난에 대응해 온 구호 모금 전문기관이 바로 희망브리지다. 지난 1961년 태풍 '사라'의 피해 이웃돕기 모금 운동을 계기로 발족한 '전국수해대책위원회' 이후 '전국재해대책위원회' '전국재해대책협의회'를 거쳐 '전국재해구호협회'로 개칭됐다. 순수 민간단체이자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정 구호단체다.
설립 이후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희망브리지는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재난의 순간에 있었다. 태풍과 홍수와 같은 자연 재난 외에도 희망브리지는 이리역 폭발 사고(1977년),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 연평도 포격(2010년), 세월호 참사(2014년) 등의 사회적 재난에서도 앞장서 피해 이웃을 돌봐왔다. 전 세계를 혼돈에 빠트린 코로나19 초기, 수개월 만에 1000억원 넘는 기부를 받은 희망브리지는 대구·경북 지역 시민들에게 마스크, 손소독제 등 방역 물품을 지원했고, 격무로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의료진에게도 간식을 제공하는 등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다.
희망브리지가 다른 구호 모금단체와 차별화되는 점은 모금 이후 피해자와 피해 지역에 대한 구호와 지원의 폭이 넓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한 직후에는 경기 파주시와 경남 함양군에 위치한 재해구호물류센터에서 대피소 칸막이, 생활필수품으로 구성된 키트, 재난에 트고하된 자원봉사자용 물품 키트 등을 빠르게 출고하고 세탁, 방역, 심리지원 등 특수차량을 현장에 투입해 이재민의 크고 작은 불편을 덜어준다.
모금으로 거둔 성금은 피해를 입은 지자체가 조사·제공한 피해 현황을 기준으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폭우, 태풍과 같은 자연 재난은 재해구호법으로 정해진 배분위원회를 통해 이재민의 일상 회복을 돕는다. 산불, 감염병 등 사회재난은 중복, 편중, 누락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와 피해 지자체, 다른 모금 단체들이 참여하는 기부금협의체를 통해 배분하기도 한다.
희망브리지가 모집한 성금은 기획재정부가 고시하는 회계기준에 따라 결산 서류가 공개되며, 각 모집 성금의 용처에 따라 '재해구호법'과 '기부금품법'에 따라 관리된다. 연간 결산서류는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시스템을 통해 자세히 공개된다. 광고를 거의 하지 않고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희망브리지의 철학이다. 그 결과 희망브리지는 국내 유일 민간 공익법인 평가기관 '한국가이드스타'로부터 회계 투명성과 신뢰성 평가에서 4년 연속 최고등급을 획득했다.
김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와 연관해 올해는 유달리 큰 재난이 많이, 자주 발생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지속되고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희망브리지는 기후재난에 면밀히 대응하는 한편,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피해 이웃들과 그들의 일상 회복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