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인마' 판결문 보니...강력범죄 징후 곳곳서 보였다
2022.09.20 15:50
수정 : 2022.09.20 16: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과 같은 스토킹 관련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구속부터 형량까지 법적 조치가 미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징조'를 수차례 간과한 탓에 발생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사건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보복' 목적으로 살인한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보복살인죄로 유죄가 확정된 사건에서도 이 같은 징조가 곳곳에서 확인됐다.
■강력범죄 징후 곳곳서 발견
전 연인을 수차례 찾아가 행패를 부리다 끝내 살해한 50대 남성 A씨도 살인 범행 전부터 '널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징후가 발견됐다. 피해자 B씨가 운영하는 노래주점에서 행패를 부리고, B씨를 폭행한 혐의로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A씨는 지속해서 B씨를 찾아 형사사건 합의를 요구했다. '다시 찾아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찰의 경고도 살인을 막지는 못했다. A씨는 1시간여 뒤 다시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B씨는 결국 숨졌다. A씨는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7년을 확정받았다. 특가법상 보복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법상 살인죄의 형량(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더 무겁다. 특가법상 보복 범죄는 범죄 신고자 보호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만큼 법원도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고소·고발을 꺼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스토킹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김병찬 사건의 주된 동기도 '형사사건'이었다. 김씨는 스토킹 범죄로 고소당한 뒤에도 "신고를 취소해달라"며 피해자의 집과 직장을 찾아갔다. 김씨의 형량에는 '비난 동기 살인', '계획적 살인', '잔혹한 범행 수법'이 반영됐다.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특수감금 혐의, 상해 혐의 등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 점도 형량을 높였다.
■'신당역 살해범' 전주환, 최대 무기징역도
'신당역 살해범' 전주환(31) 역시 강력범죄로 비화할 조짐이 없지 않았다. 수년간 300차례가 넘는 전화와 메시지를 남기며 만남을 요구하다 "이러면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협박에 이르는 등 점차 협박 수위를 높여갔다.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가 적용된 전씨는 법원에서 최대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 판결서열람시스템에서 2015년 1월부터 현재까지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된 사건 10여건 가운데 2건은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대부분 징역 20년~35년의 중형선고가 이뤄졌다.
형사고소를 이유로 한 직접적인 위협이 없었더라도 여러 정황을 따져 보복목적 여부를 가리는 만큼, 스토킹 관련 혐의로 1심 판결 선고를 앞뒀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복목적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해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보복범죄'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보복범죄' 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형사고소나 재판 등을 동기로 한 범죄를 '보복 범죄'로 표현하는 것은 '리벤지 포르노'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잘못한 사람에 대해 응징한다는 의미로 잘못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률상 표현이 기존에 있던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자구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