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돕는 의사 '조력 존엄사'... 당신의 생각은?
2022.09.29 05:00
수정 : 2022.09.29 04: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좋은 죽음(Well-Dying)'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환자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공론화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 달리 '조력 존엄사'는 말기 환자가 의사로부터 약물을 받아 스스로 주입해 삶을 마무리하는 형태의 죽음을 말한다. 다만 의료계는 해당 제도를 도입한 국가가 극히 일부인 데다 우리 사회가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만큼 서둘러 도입을 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민은 80%가 "찬성".. 의료계는 "시기상조"
2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력 존엄사법)'을 발의하면서 불을 지폈다. 법안은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 중 스스로의 의사로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경우 결정기구를 거쳐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력 존엄사를 도운 의사는 형법상 자살방조죄의 적용이 배제된다.
일단 대중들은 조력 존엄사에 찬성하는 의견이 반대보다 높다. 개정안 발의 후 한국리서치가 국내 성인 1000명에게 조력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지난 7월 진행된 이 여론조사에서 조력존엄사 입법화를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이 20%, '찬성한다'는 의견이 61%였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대해 찬성하는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25%),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등이 꼽혔다.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도 ‘좋은 죽음’을 위한 선택권을 제공하자는 법안의 취지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보내고 있지만, 의료계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는 법안이 발의되자 지난 6월 입장문을 내고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의 확충,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의 뒷받침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양준석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도 조력 존엄사 도입이 너무 이르다고 보는 입장이다. 양 연구원은 "괴롭고 아픈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조력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과연 '존엄한 죽음'이라고 볼 수 있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자살률 1위의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조력 존엄사를 통해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5년... 윤리위 있는 병원만 선택권
현장에서 많은 임종 환자를 지켜본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선택권 확대를 위해 지난 2018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현장에서 유의미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도입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도 지난달 기준 누적 140만명을 넘어서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현실과 제도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먼저 현행법상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의료기관에서만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과 이행이 이뤄질 수 있는데 전체 병원의 10.5%에만 설치돼 있다는 점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 경우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어도 병원에 윤리위가 구성돼 있지 않으면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내릴 수 없다.
28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3226개 병원 중 상급 종합 병원을 위주로 338개 병원에만 윤리위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령의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의 약 5%에만 윤리위가 설치된 상태다. 유 교수는 "요양병원 등에서 행하고 있는 연명 의료현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무작정 윤리위 설치를 확대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 임종 상황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현행법이 '임종 상태'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유 교수는 "현장의 의료진은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며 “의료진도 제도에 숙달된 것이 아니라 '임종 상태인지 아닌지' 등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법을 살펴보면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 임종 상태 환자를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에 의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여,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은 자'라고 명시돼 있다.
유 교수는 "좋은 죽음은 모두에게 다르지만 피하고 싶은 죽음의 형태는 대부분 비슷하다"며 "내가 어떤 죽음을 피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것도 웰다잉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의료적·사회적 측면에서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